문 대통령 “권력기관 개혁 완수 중책”… 정권=조국 동일시

입력 2019-09-10 04:07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신임 장관 및 장관급 인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문 대통령,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조국 법무부 장관. 서영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면서 2017년 대선 공약이었던 ‘권력기관 개혁’을 다시 꺼내 들었다. 권력기관 개혁은 자신의 핵심 공약이고, 이를 위해선 조 장관 임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권 내에서는 “문 대통령이 조 장관과 정권을 동일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는 지난 대선 때 권력기관 개혁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고, 그 공약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았다”며 “저를 보좌해 저와 함께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매진했고 성과를 보여준 조 장관에게 그 마무리를 맡기고자 한다는 발탁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 의지가 좌초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 임명이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정부의 국정 기조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권력기관 개혁도 그 못지않은 대선 공약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법개혁은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여기에 대한 전문성과 대통령 의중,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능력을 같이 갖춘 경우는 드물다. 조 장관은 그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결정엔 당정청과 지지층의 ‘조국 사수’ 단일대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청와대 참모들은 한목소리로 검찰을 비판했다. ‘조 후보자를 반드시 임명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74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검찰이 조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에 나서자 “기밀누설죄를 범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도 43만명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조 장관에 대한 임명 철회를 할 경우 당청 사이의 책임 공방, 지지층의 균열도 예상됐다.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를 지명 철회할 경우 자유한국당에 정국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기국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조 장관이 낙마할 경우 청와대 민정 인사 라인에 대한 야당의 파상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후임자 인선과 인사청문회 등에서도 다시 ‘야당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조 장관을 사법개혁의 아이콘으로 내세우면서 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각종 의혹은 조 장관 일가에 대한 문제였지만, 임명 이후엔 문 대통령도 함께 책임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조 장관 배우자의 여러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거나 검찰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문 대통령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한 여당 의원은 “문 대통령은 ‘조국이 물러나면 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정권은 대통령만의 정권이 아니라 민주당 정권이기도 하다”며 “이런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적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너무 조 장관에게 집착하니까 정면으로 말하기가 부담스러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일 참모들과 자정을 넘기며 4시간 이상 마라톤 회의를 거쳤고, 8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에게 임명 메시지와 지명 철회 메시지를 모두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날 오전 핵심 참모들에게 임명 결정을 알렸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