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도 도리안 영향권”… 지도에 가필한 트럼프

입력 2019-09-09 04: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공개한 허리케인 ‘도리안’의 예상 이동 경로. 당초 흰색으로 표시된 예상 피해 지역에 앨라배마주를 포함시키기 위해 검은색 사인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흔적이 보인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안’의 경로를 두고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앨라배마주도 허리케인 영향권에 든다고 밝히자마자 지역 기상 당국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1주일째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며 자국 언론을 향해 ‘가짜뉴스’라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 1일(현지시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리안의 접근에 대비해 비상체제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플로리다주 외에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캐롤라이나주, 조지아주, 앨라배마주에 예상보다 훨씬 큰 타격이 미칠 수 있다”며 “(도리안은) 역대 최대 규모의 허리케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앨라배마주는 피해 예상 지역에서 빠져 있었다. 앨라배마주 최대 도시인 버밍햄 기상청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올린 지 20여분 뒤 공식 트위터 계정에 “앨라배마주 전역은 도리안으로부터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버밍햄 기상청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직후 허리케인 피해를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문의전화에 한동안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앨라배마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방 재난관리청 브리핑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도리안의 진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앨라배마주도 피해 예상 지역에 있었다는 내용의 지도를 집무실에서 직접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비판한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 공개는 다른 논란을 유발했다. 지도에서 앨라배마주를 허리케인 영향권에 넣기 위해 사인펜으로 가필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필 흔적을 묻는 기자들에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가필한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사인펜 브랜드 ‘샤피’에 빗대 ‘샤피게이트(Sharpie-gate)’라고 지칭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폭스뉴스 백악관 출입기자인 존 로버츠를 집무실로 불러 폭스뉴스의 보도 태도를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멕시코 국경지역을 찍은 사진에 사인펜으로 장벽을 그려 넣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장벽을 완성했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등 관련 패러디도 쏟아져 나왔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이 트럼프 대통령의 편을 들고 나섰다. NOAA는 지난 6일 성명을 내고 “NOAA와 국립허리케인센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앨라배마주도 도리안의 피해 예상 지역이라는 보고를 올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앨라배마주는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버밍햄 기상청의 닷새 전 발표 내용을 부인했다.

WP는 NOAA 고위인사가 직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상충하는 의견을 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NOAA 소속 기상학자를 인용해 7일 보도했다. 보복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이 기상학자는 WP에 “예보를 있는 그대로 말하지 말라고 윗선이 압력을 넣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