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법 철회, 가짜 양보에 늑장”… 홍콩 시민 “시위 계속할 것”

입력 2019-09-06 04:03
홍콩 툰먼구 지역 고등학교 학생들과 이 지역 고교 졸업생들이 5일(현지시간) 홍콩 시위대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모여 인간띠를 만들고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전날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홍콩 시위대는 시위를 계속할 방침이다. AFP연합뉴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홍콩 시위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기로 했다. 반면 홍콩 내 친중파들은 람 장관의 발표를 환영하고 나서 이번 주말 시위가 홍콩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람 장관이 송환법 공식 철회 발표를 했음에도 시위대와 정치권 일각에선 람 장관의 양보가 너무 적고, 발표도 늦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위 주도 단체 상당수는 시위대가 요구해온 5개 사항을 홍콩 정부가 모두 수용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인 클라우디아 모도 “캐리 람은 이처럼 작고 모호한 조치로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고, 우치와이 홍콩 민주당 주석은 “가짜 양보”라거나 “시위대를 향한 강경 조치의 서막”이라고 공식 철회를 평가절하했다.

반면 친중파 진영과 재계는 송환법 공식 철회를 환영했다. 주홍콩 미국 상공회의소는 “홍콩의 국제적 명성을 되찾는 중요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친중파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의 스태리 리 주석은 “이번 양보에도 불구하고 폭력 충돌이 심해진다면 정부는 ‘긴급법’이나 ‘공안조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모든 관심은 이번 주말 시위로 쏠린다. 시위대는 오는 7일 홍콩 쇼핑몰 등에서 소비 자제 운동을 펼치고, 홍콩국제공항 주변의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8일에는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15일 주말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송환법 철회에도 시위가 계속된다면 중국 본토의 무력개입이 불가피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오는 10월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행사를 앞둔 중국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 무장경찰을 배치하는 등 무력개입을 위협했음에도 중·고등학생들까지 동맹휴학에 참여하자 결국 송환법 철회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위가 이어진다면 무력개입 등을 고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일 한 연설에서 “홍콩, 마카오, 대만이 중국 공산당의 주요 위협이며 3개 지역의 도전에 맞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베이징의 정치평론가 장리판은 “시 주석이 이들 지역을 특정한 것은 최근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베이징이 이들 지역을 중국 공산당의 권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