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재검토” 지시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불가피

입력 2019-09-02 04:03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입시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지시한 것은 수년간의 개선 대책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에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 문제를 계기로 드러난 ‘스펙’의 폐해와 수시 제도의 불공정성을 고치지 않고선 악화된 여론을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공정사회’는 문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어서 조 후보자 임명 문제와 별개로 입시 역시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공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발언을 소개하면서 조 후보자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도 정부가 대입 제도 개선 문제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고 밝혔다. 다만 수시를 확대할지, 정시를 확대할지를 놓고선 여러 가지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수시든, 정시든 어느 한쪽이 확대될 경우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 후보자 딸 문제를 계기로 국민적 불만이 팽배해졌으니 이번 기회에 다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도출해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교육부가 분주해지고 있다. 당초 교육부는 ‘조국 딸 입시 파동’으로 수시 제도의 정당성과 신뢰성이 휘청이자 보완책을 만들고 있었다. 다만 학생 학부모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세 조정’ 입장이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에서 결론을 낸 큰 틀이 있다. 강화 대책보다는 보완 대책이란 용어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조만간 실시될 사립대 종합감사를 통해 입시와 관련한 문제가 제기될 경우 수시 관련 전형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지시로 대입제도 전반을 다시 들여다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시 확대가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나온 ‘정시 50% 확대’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정시 확대에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지난해 8월 교육부는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와 협의해 ‘정시 30% 룰’(모든 대학이 정시 모집으로 30% 이상 선발)을 만든 바 있다.

교육부는 정시 30% 룰을 ‘사회적 합의’라며 정시 확대 주장을 일축해 왔다. 특히 조 후보자 딸 논란이 정시 확대 논의에 불붙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 지시로 정시 30% 룰까지 재검토 대상이 될 경우 그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수능 개편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산하 대입제도개선연구단은 수능을 선발의 변별 도구가 아닌 학업 역량을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하기 위해 전 과목 절대평가, 수능 자격고사화, 논술·서술식 수능, 수능 Ⅰ·Ⅱ 등 다양한 유형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장 제도를 크게 손질하기보다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을 강화해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도 거론된다. 교육부는 학종의 초기 형태인 입학사정관제 도입 때부터 공정성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논문, 공인어학성적, 교과 외부 수상실적 기재 금지, 소논문 금지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해 왔다.

청와대는 입시 제도의 폐해와 함께 명문대를 졸업해야 괜찮은 직장을 얻을 수 있게 된 현실도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상위권 대학 위주로 사원을 뽑는 기업 풍토가 무리한 스펙 경쟁을 통해 입시 경쟁을 부채질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제도 개선이든 공정의 회복이든 조 후보자가 사퇴한 이후에 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온갖 특권을 누린 조 후보자 일가의 죄를 제도 탓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입시의 투명성과 정시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에 귀를 닫아온 것도 현 정부가 아니었냐”고 따졌다.

이도경 박세환 김용현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