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면서도 생활력 강한 부모님 아래 독립적이고 반듯해서 ‘군기 빠짝 든 여군’ 또는 ‘군기반장’이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 누구에게나 할 말을 다했고 툭하면 ‘지금 장난해?’ 또는 ‘결론이 뭔대?’라고 상대를 늘 다그쳤다. 부모님은 대기업에 다니는 나를 자랑스러워 했지만 사무실보다 좀 더 신나는 삶을 살고 싶어 부모님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학연수라는 미명 하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의 문화는 내 적성에 딱 맞아 하루하루가 무척 즐거웠다. 한인교회에 나가며 새벽예배, 청년부 활동, 단기선교, 한인 유학생들의 선교를 위한 ‘코스타’ 집회에도 참가하며 나름대로 뜨거운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 비자가 만료돼 귀국했다. 하지만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삶은 늘 우울했다. 뜨겁던 신앙도 식어서 높은 곳에서 번지 점프하듯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정말 빨리 죽고 싶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할 때 선배의 소개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망설임 없이 바로 떠났다. 뉴저지를 중심으로 일하며 뉴욕 등 여러 도시에 자주 출장도 다녔다. 골프를 즐기고 가든파티에 바비큐와 크랩을 즐겨먹으며 신나게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허무와 회의감이 몰려와 회사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귀국했다.
돌아 온 얼마 후 한마음교회 작은 교회 예배에 처음 참가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예수는 역사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4대 성인으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고 BC와 AD의 기준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사실이 세계 인물사전에 기록돼 있음을 발견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같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 형을 미쳤다고 한 동생 야고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인 사울,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에 부활을 전하다 순교한 사실 앞에 꼼짝할 수 없었다. 진짜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 앞에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게 되며 그동안 내가 주인 돼서 내 멋대로 살아온 악랄한 죄인이었음을 보게 됐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와 함께하자고 하셨다. 나는 바로 그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바로 달려나간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데 모든 것을 투자했다. 가족들은 ‘너! 아예 신학 공부를 해라’며 비꼬았고 친구들은 너무 빠지지 말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나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전력질주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말씀으로 내게 사랑이 없음을 알려주셨다. 깊은 사귐을 갖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자 바로 교회 생활관에 들어가 신앙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론이 뭔대?’라던 내가 교회 지체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모든 삶을 함께했다. 마침 교회가 새 성전으로 이전해 매일 지체들과 쓸고 닦으며 청소했고 3개월 이상 점심식사와 간식, 때론 저녁식사까지 준비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핏값으로 산 교회 공동체의 틈을 메우고 영원한 가족인 지체들을 섬기며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았다.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복음을 전한다. 많은 아이들이 주님께 돌아와 작은교회를 세워 예배도 드린다. 주일학교 유년부 교사로 어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토요일이면 캠퍼스, 공원 등을 돌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한다. 독불장군이었던 나를 이 땅에서 최고로 지혜롭고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사랑에 감사의 눈물만 나온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신바람 나게 주님과 함께 달려갈 것이다.
문기정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