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 갈라디아서 5장 17절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욕망의 최고점을 꺾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욕망과 이를 제어하려는 의지 중 어떤 힘이 강할까. 사람들은 욕망과 의지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망과 끊어야겠다는 의지가 갈등을 일으키는 식이다. 성적인 욕구로 금지된 선을 넘어가려는 욕망과 그 선을 넘는 걸 죄악으로 여기고 이겨내려는 의지가 싸우기도 한다.
의롭지 못한 돈의 유혹을 받았을 때 불의와 타협해 돈을 가지고 싶다는 갈망이 일기도 한다. 반면 불의한 돈에 흔들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과감하게 돌아서는 양심의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은 사실 욕망과 의지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날 때부터 조금 더 자고 싶은 욕망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다툰다. 매 끼니 조금 더 먹고 싶은 욕망과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줄이려는 의지가 팽팽히 맞서기도 한다.
욕망과 의지 사이의 승패는 묘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욕망이 승리했을 때 행복보다는 허무함이 찾아온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 뒤 찾아오는 허무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토록 마시고 싶은 술이었지만 지난 밤의 흐릿한 기억들 속에서 자신이 한 실수를 떠올리며 아침을 맞이할 때의 후회도 마찬가지다. “술 끊어야지. 다시는 입에도 안 댄다”라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무너진다. 또다시 후회를 반복하는 셈이다. 배가 터질 만큼 먹은 후 산처럼 튀어나온 배를 보고도 후회한다.
욕망이 의지를 이겼을 때는 대부분 후회가 밀려온다. 반대로 의지가 승리했을 때는 행복을 경험한다. 강한 유혹을 뿌리쳤을 때 자신을 지켰다는 행복, 가정을 지켜냈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자, 좀 더 쉬자는 안일함과 나태의 늪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무언가를 성취해 낸 사람은 만족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욕망은 커질수록 욕심이 된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욕망의 본질이다.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살면 좋겠다던 사람도 의식주가 해결되면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으려 한다.
현대 사회는 욕망의 최고점을 찍은 시대다. TV 인터넷 스마트폰은 현대인들에게 욕망의 미끼를 수없이 던지며 낚시질한다. 누군가 펼쳐 놓은 욕망의 전시를 관람하며 취하려고도 한다. 서너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흉내 낸다. 청소년 청년 노인들까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뇌 속에 입력돼 있을지도 모르는 욕망의 형상을 마치 자신의 꿈인 듯 실현하겠다며 몸부림친다.
세상은 우리에게 쉬지 않고 욕망을 심는다. 욕망에 패할수록 우리는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만다. 욕망의 최고점을 찍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의지의 최고점을 찍어야 한다. 자기 의지와 절제력을 키워야 우리 안의 욕망이란 공룡에게 먹히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자기 관리와 절제의 첩경이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육체의 욕망을 이기는 자가 결국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겨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도 욕망에 길들여진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길 소망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
약력=1961년 인천 출생, 한양대 의학박사.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박사연구원, 피츠버그대 의대 스포츠의학연구소 객원 연구원, 하버드대 의대 정형외과학 방문연구원 역임. 라오스·파키스탄(2004년) 네팔(2006년) 미얀마(2009년) 필리핀(2011년)에 선교병원 설립, 2015년 제31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 저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규장) ‘바디 바이블’(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