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부터 ‘화이트리스트 제외’ 시행… 한·일 관계 다시 분수령

입력 2019-08-27 04:02

일본이 오는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 제외 조치를 본격 시행한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가 한·일 갈등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최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동해 영토수호훈련 등의 강경책을 구사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일본 내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노무관리 점검 등의 맞대응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일본이 새로운 대응 카드보다는 향후 상황을 관망하면서 한·일 갈등이 숨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26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시행한다. 일본은 지난달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고순도 불화수소·포토 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일본 정부는 이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포토 레지스트 수출은 허가했지만,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 허가는 한 건도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를 기점으로 수출 규제 품목을 추가할 수 있다.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공작기계와 정밀화학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 우리 산업계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측이 지난 22일 지소미아 종료와 전날부터 이틀간 독도 등에서 동해 영토수호훈련을 시행하면서 일본 측이 수출 규제 외에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맞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일본 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와 노무관리 점검 등 다양한 형태의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6년 7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한·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 당국이 롯데그룹에 취한 조치와 유사한 행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롯데그룹 계열사 전 사업장에 대해 세무조사, 소방·위생점검, 안전점검 등을 실시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또 일본계 은행의 국내 여신 회수 카드를 쓸 수도 있다. 일본계 은행이 국내에 가진 여신은 지난해 9월 국제결제은행(BIS) 집계에 따르면 586억 달러(71조여원)에 달한다. 이들 자금에 대한 부분적인 회수 조치로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를 시행하는 만큼 다른 분야에서 추가적인 대응은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른 분야에서의 조치는 큰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고, 수출 규제 조치의 ‘안보상 신뢰 문제’ 같은 뚜렷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추가 대응을 자제한다면 한·일 간 대치 국면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양국 간 근본적인 갈등 이유인 징용 배상 판결 문제의 해결을 외교채널을 통해 시도할 수 있다. 또 지소미아 종료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는 미국이 한·미·일 3국 안보공조 체제 복원을 위해 개입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한·일은 지난달부터 두 달 가까이 심각한 갈등을 이어 왔다”며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외에 가시적인 대응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은 양국 모두 숨 고르기를 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볼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