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어록 꺼낸 中… 또 홍콩 무력개입 시사

입력 2019-08-27 04:05
마스크를 착용한 소년이 26일 어머니 품에 안겨 홍콩 완차이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연좌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소년의 어머니는 두 손에 ‘홍콩 경찰의 권한 남용을 진상 조사하라’ ‘홍콩을 해방하라, 우리 시대의 혁명’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전날 시위에선 화염병과 최루탄, 물대포가 등장했고 시위대에 쫓기던 경찰이 실탄 경고사격까지 하는 등 홍콩 사태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에게 쫓기던 경찰이 실탄 경고사격까지 하는 등 홍콩 사태가 한층 격화되고 있다. 시위 현장에 화염병과 최루탄, 물대포까지 등장하면서 이미 ‘비폭력’ 분위기는 물건너간 상황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어록을 거론하며 무력진압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올해 중국의 최대 행사인 신중국 수립 70주년(10월 1일)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쯤 시위대와 충돌을 빚던 경찰이 권총을 꺼내 허공에 실탄을 쏘는 경고사격을 하고 총구를 시위대를 향해 겨누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 초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에서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관 10여명은 시위대가 중국 본토인 출신 소유로 추정되는 상점의 기물을 부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흥분한 시위대가 각목 등을 휘두르며 공격하자 수적 열세인 경찰은 쫓기기 시작했고 경찰관 1명은 바리케이드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곧이어 1발의 총성이 들리고 경찰관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관은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한 경찰이 권총을 공중으로 발사했다”고 말했다. 쫓기는 과정에서 다친 경찰관 5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 등 모두 3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대 36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시위가 다시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자 중국은 무력사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관영 신화통신은 25일 오후 늦게 시론을 통해 덩샤오핑이 일찍이 “홍콩에서 동란이 일어나면 중앙정부가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홍콩에 대한 개입은 중앙정부의 권한이자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사태가 악화되면 인민해방군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마리아 탐 전국인민대표회의 기본법위원회 부의장은 앞서 선전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홍콩은 혼란에 빠져 있고, 중앙정부는 개입할 수 있다”며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은 허수아비가 아니며, 홍콩의 혼란을 멈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매체들은 시위 주도 세력이 비정부기구(NGO)인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의 지원을 받아 왔다며 ‘미국 배후론’도 집중 부각시켰다.

홍콩 시위의 장기화·과격화에 따라 신중국 수립 70주년 행사를 앞둔 시진핑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국력과 중국 공산당의 위상을 과시하는 계기로 행사를 준비해 왔는데 미·중 무역전쟁에다 홍콩 사태까지 터져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문제는 대학생들과 중·고생들이 2학기 수업거부를 예고하고 있어 시위가 10월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집회로 예정된 이번 주말 시위가 무력개입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홍콩 전역에 시위가 계속 발생하는 데다 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외교부는 이날 홍콩에 1단계 여행경보(남색경보·여행유의)를 발령했다. 여행경보는 남색-황색(여행자제)-적색(철수권고)-흑색경보(여행금지)의 4단계로 운영된다. 외교부는 홍콩 시위 동향과 정세·치안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여행경보 추가 발령이나 해제를 검토할 예정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이상헌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