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의 특정 국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시한을 나흘 앞둔 상황에서 핵심 기술 자립을 통해 일본의 수출 보복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북 전주에 위치한 효성첨단소재 탄소섬유 공장에서 열린 1조원 규모의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통해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시스템반도체 등 미래 신산업을 적극 육성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작이다. 제조업 강국 한국의 저력을 다시 보여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문 대통령이 관련 현장 기업을 찾은 것은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정밀 제어용 감속기 생산 전문업체인 SBB테크를 방문했었다.
탄소섬유는 철보다 4배 가볍고 강도는 10배 강해 ‘꿈의 첨단소재’로 불린다. 일본의 기술 수준이 높아 대일 의존도가 큰 소재로 꼽힌다. 탄소섬유는 수소차 수소연료탱크의 핵심 소재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의 탄소섬유 공장 방문은 극일(克日)을 위한 ‘기술 국산화’의 중요성을 거듭 피력하고 주요 신소재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효성의 탄소섬유 투자 결정을 언급하며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는 비상한 각오와 자신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이 필요하다. 수소경제와 탄소섬유산업이 그 해답 중 하나”라며 “탄소섬유 등 100대 핵심 전략 품목을 선정해 향후 7년간 7조~8조원 이상의 대규모 예산을 투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협약식 이후 공장 증설 예정지를 시찰했다. 문 대통령은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설명을 들은 뒤 “일본이 2차전지 등의 소재 수출을 통제하면 우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국민들의 걱정이다. 기대가 크다”고 격려했다. 조 회장이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 일관공정(제선·제강·압연 공정이 하나의 장소에서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 환경을 구축하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자신 있습니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전북 익산에 있는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의 공장도 방문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를 당부했다. 하림은 2024년까지 8800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2000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대부분의 대기업 본사가 수도권에 있는 것과 달리 하림은 익산에 본사를 두고 성장의 과실을 지역과 함께 나누는 상생협력의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일 지소미아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 (우리와 교류되는) 군사정보의 양적·질적 평가 등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일본과의 대화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부터 진행되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통해 일본 측에 우리 정부의 의사를 적극 개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