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에는 해방 전후 문인·사상가의 작품이 많이 인용됐고, 가상의 인물 이야기로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텔링 기법도 사용됐다.
문 대통령은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고, ‘함경북도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 해양학교 졸업 후 남미행 컨테이너선 항해사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으로 남북 평화경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북한 농부들과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충남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라고 했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러시아와의 농업 협력을 추진했던 지역이다. 서산에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1998년 방북할 때 몰고 갔던 소들이 길러진 농장이 있다.
경축사에서는 작가 심훈(1901∼1936)의 시 ‘그날이 오면’과 김기림(1908~미상)의 시 ‘새나라 송(頌)’이 인용됐다. 1930년 발표된 ‘그날이 오면’은 다가올 광복의 기쁨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평소 연설에 문학 작품을 자주 인용하는 문 대통령의 감성적 화법에는 ‘대통령의 필사’ 신동호 연설비서관의 영향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경축사에 사용된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친다”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교육자 남강 이승훈(1864~1930)의 말이다. 임시정부의 정책 이론가였던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三均主義)’는 경축사에서 한반도 교량국가화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예시로 쓰였다.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장한 삼균주의는 임시정부의 기본 이념이었다.
청와대 참모진은 이번 경축사를 준비하면서 각계 인사들을 상대로 경축사에 어떤 메시지를 담으면 좋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했고, 그 결과 ‘경제’를 키워드로 정했다. 문 대통령도 “경제와 관련한 희망의 메시지를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등의 이슈는 빠졌다. 경축사 작성에는 한 달 반 정도가 걸렸다. 이 기간에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이 주재하는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세 차례씩 열렸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