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홍콩 시위, 체제 전복 노리는 색깔혁명”… 군 투입 명분 쌓나

입력 2019-08-09 04:02
홍콩 시민 수천명이 7일 밤(현지시간) 침사추이에 위치한 우주박물관 앞에서 경찰 당국에 대한 항의 표시로 ‘레이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경찰은 시위 때 강한 빛을 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며 레이저포인터 10개를 구매한 홍콩침례대학 학생회장인 케이스 풍을 무기소지 혐의로 체포했다. AP연합뉴스

범죄자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과격 양상을 보이자 중국 중앙정부가 ‘색깔혁명’으로 변질됐다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시위 진압을 위해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경고해 온 중국 정부가 시위대에 대해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셈이어서 향후 대응 수위가 주목된다. 인민해방군 투입을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8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장샤오밍 홍콩·마카오 판공실 주임은 전날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비공개 좌담회에서 “홍콩 시위는 이미 변질돼 ‘색깔혁명’의 특징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정부 관리가 홍콩 시위에 대해 색깔혁명이란 용어를 쓴 것은 처음이다.

색깔혁명은 2000년대 초반 구소련 국가와 발칸반도 등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일어난 정권교체를 이르는 말로 당시 꽃이나 색깔로 이를 표현했다. 조지아의 장미혁명,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 등이 해당된다. 장 주임은 “현 시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심각한 국면”이라며 “홍콩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동란이 일어난다면 중앙정부는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문제 전문가인 톈페이룽 베이항대학 교수는 “색깔혁명이라고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한 신호로, 시위 사태가 홍콩 정부를 마비시키고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해치려는 목적이 있다는 뜻”이라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면 중앙정부가 전면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좌담회 참석자에 따르면 장 주임은 과거 홍콩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발언을 인용했지만 인민해방군 투입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톈 교수는 “홍콩 정부가 중앙정부에 요청하면 인민해방군이 투입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지만, 비상사태 시 본토의 경찰 및 무장경찰도 동원될 수 있다고 돼 있다”면서 “인민해방군이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 매체들은 이날 대공보와 문회보 등 홍콩 내 친중국 매체를 인용해 인터넷에서 홍콩 시위 주도자들과 미국 영사가 만나는 사진이 공개됐다며 홍콩의 혼란을 미국이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에 포착된 인물은 2014년 ‘우산혁명’의 선두에 섰던 조슈아 윙, 네이선 로 등 야당인 데모시스토당 지도부와 홍콩대학 학생회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6일 홍콩 애드미럴티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주홍콩 미국 총영사관의 여성 간부와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