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국제 교역환경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한국 경제가 연일 된서리를 맞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이 IT(정보기술) 분야로 확대되면서 한국 수출을 견인해온 반도체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8일 공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지난 5월 이후 한국 수출의 감소폭이 확대된 점에 주목하며 미·중 무역분쟁이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감소세를 보인 한국의 수출 실적은 올 초부터 고비를 넘기는가 싶더니 미·중 갈등이 격화된 5월부터 다시 눈에 띄게 나빠졌다. 올해 2월 전년 동기 대비 11.3%까지 확대됐던 수출액 감소폭은 4월 2.1%까지 좁혀졌다가 5월 9.7%, 6월 13.7%로 빠르게 확대됐다.
한은은 미·중 무역분쟁이 세계 경기와 교역에 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면서 한국의 수출물량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6월에는 국제 교역 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 품목에서 수출 물량이 줄었다. 지난 1~4월 -1.4%였던 전년 동기 대비 수출물량지수 증감률은 5월 -3.3%, 6월 -7.3%로 커졌다.
한은이 실증분석을 진행한 결과 지난해부터 미·중 무역갈등 문제가 터질 때마다 세계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이는 수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6월도 마찬가지였다. 경제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 교역 상대국이 수입을 미뤄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한국은 미·중 무역분쟁이 5월 이후 IT 부문으로 확산되면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싸움은 반도체 경기 회복을 늦추면서 반도체 수출물량 회복세를 둔화시키고 단가 하락에도 영향을 줬다. 가격이 떨어지면 같은 양을 팔더라도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든다. 지난해 12월 7.3달러였던 D램 단가는 지난 6월 절반에도 못 미치는 3.3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 1월(-1.9%)을 저점으로 반등하던 반도체 수출물량은 5월 들어 증가세가 크게 꺾였다. 수출금액은 10~20%대의 감소세를 거듭하는 중이다. 지난달에는 해외에 내다 판 반도체 물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5% 늘었지만 벌어들인 돈은 24.8% 줄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미국의 중국 기업 거래 제한 등으로 인해 글로벌 IT 관련 투자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된 데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메모리 수요가 제대로 확보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도체를 가져다쓰는 업체는 새로 구입하기보다 보유한 물량을 먼저 활용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반도체 단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키우고 수요 회복에 제동을 걸어 한국의 반도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미·중 분쟁은 6월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이후 다소 누그러졌다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조치를 언급하면서 다시 격해졌다. 여기에 중동지역 정세 불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 일본 수출 규제 등도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는 위험 요인이다.
한은은 “미·중 무역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글로벌 통상여건 변화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