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에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한·일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 청구서는 한국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총기 참사 지역인 오하이오주 데이턴과 텍사스주 엘패소를 방문하기 전 백악관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나는 합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한국)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내는 데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3만2000명의 군인을 한국 땅에 주둔시키고 있으며 82년 동안 그들을 도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한·미 관계는 매우 좋다”면서도 “나는 수년 동안 그것(방위비 분담금)이 매우 불공정하다고 느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낼 것(pay a lot more money)”이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은 2020년 대선 승리에 쏠려 있기 때문에 남북한에 대한 대응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외교 치적으로 내세우기 위해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문제삼지 않고 있다”면서 “반면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로 미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 등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도 한국 일본 독일 등을 겨냥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경우 주둔 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도 “한국은 미국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매우 부유한 나라”라면서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거의 돈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한국이 9억9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를 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트위터 글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 외교부는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위한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주둔 규모도 정확하지 않고, 그가 왜 ‘82년 동안’을 언급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행보는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압박을 한국에 가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취임 후 처음으로 8일 한국을 방문한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을 통해 구체적인 방위비 증액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6조원)를 요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환율을 감안하면 올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6배 가까운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에 대해서도 주일미군 주둔비 5배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다른 종류의 안보 청구서를 꺼내들 가능성도 크다.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에도 한국의 참여를 거듭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약고로 부상하는 미국의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도 변수다.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요구할 경우 중국의 반발로 ‘제2의 사드 사태’가 우려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