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은 5일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 전자 계열사 경영진과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일본 규제 확대에 따른 위기상황에 대한 영향 및 대응계획과 미래를 위한 경쟁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면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한 단계 더 도약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부회장은 ‘자신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소재 수출 규제가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해온 것이 삼성의 DNA”라며 “당장 소재 재고가 며칠 남았느냐 같은 것에 집중하지 말고 글로벌 무역전쟁 이후 재편될 새로운 경제질서까지 예상하며 장기적인 차원의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6일부터 삼성전자 및 계열사 주요 사업장을 돌며 현장 점검에 나선다. 삼성전자 평택사업장(메모리),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시스템LSI/파운드리), 삼성전자 온양·천안사업장(반도체 개발 및 조립/검사), 삼성디스플레이 탕정사업장 등을 방문해 전자부문 밸류체인 전 과정을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이처럼 반도체·화학 등 대기업들은 우선 지금까지 했던 대로 소재 수급 다변화, 재고 확보에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규제 완화 등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 왔던 기업 친화적 정책을 정부가 마련해주길 바라는 눈치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이번 기회에 다시 점검하고 경제 활성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구매 의사만 있다면 중소기업에도 새로운 판로 확보의 기회가 된다는 기대감도 있다.
재계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결정 이후 발표된 정부 지원책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5년으로 상정한 정부의 지원기간 등이 소재·부품 국산화를 위한 조건으로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실효성을 높이려면 업계 의견이 반영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해외 기술기업 인수·합병(M&A) 지원방안은 현실성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의 부품·소재는 수십년간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물이기 때문에 M&A가 활발한 품목이 아니다”면서 “비용 대비 효율을 고려하면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이득일 경우가 있는데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인수전에 뛰어들면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 완화가 더 필요한 부분도 지적됐다. 한 경제단체 인사는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할 경우 환경부에 등록하기 위해 드는 테스트 비용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며 “신규 연구·개발(R&D) 등록·허가 절차 부분에서 지원책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원책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투트랙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부품·소재 독립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인 만큼 일본의 수출 규제를 철회할 수 있는 정치적 타협의 여지도 남겨야 한다”고 전했다.
최예슬 김준엽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