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개헌 야망 핵심동력으로 ‘한국 때리기’ 지속할 듯

입력 2019-08-03 04:02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각의(각료회의)에 앞서 기자단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이날 한국을 무역 우대국가인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된 수출무역관리령은 7일 공포되며, 21일부터 시행된다. 왼쪽은 이시이 게이이치 국토교통상, 오른쪽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단축 국가)’에서 제외하는 2차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의 한국 수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옥죄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한국 정부도 이날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등 총력대응을 공언한 만큼 사실상 양국간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게 됐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 보복 조치 이후 한국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관망하던 미국까지 나서서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양국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확대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교도통신은 이날 “아베 정부가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빼는 결정을 단행한 배경에는 징용소송 문제 등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있다”며 국내 여론과 미국 정부의 이해를 얻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규제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후 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한국과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에서도 ‘국제 정치와 무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복’이 아니라 ‘안보’를 위한 것인 만큼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도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수출상의 절차를 제대로 하기 위해 일본이 내린 국내 조치인만큼 한국이 반발할 문제가 아니라는 기존 일방통행 전략을 유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손해보다는 이익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한국 때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아베 정권은 공적 연금의 보장성 논란과 소비세 인상 문제 등 불리한 이슈가 묻히는 효과를 봤다. 앞으로도 보수층을 결집시켜 숙원이라는 개헌에 나서는 등 국내 이슈를 해결하는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빠르면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는 만큼 아베 총리가 선거 승리를 위해 ‘한국 때리기’를 계속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변화가 없는 한 대화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세코 장관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신뢰하며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한국의 책임이다. 한국이 성의 있는 대응을 하길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한 특단의 돌파구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한·일 관계는 극도의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 대 강’의 대치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한·미·일 동맹이 깨지길 원치 않는 미국이 중재 움직임을 보이는 데다, 일본 내에서 일본 기업과 관광업계가 역풍을 맞는 것은 일본 정부로서도 고민되는 부분이다. 특히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군사정보보협정(GSOMIA·지소미아)를 파기하는 것은 자국 내 여론에도 좋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현금화 할 경우 일본 정부는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추가 조치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관세 인상, 송금 규제,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