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 분담금 문제가 올해 하반기 양국 간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30일 미국이 차기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서 한국에 요구할 분담금 총액을 50억 달러(5조9075억원)로 정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여러 채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50억 달러’를 언급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50억 달러는 지난 2월 제10차 SMA에서 타결된 올해 분담금 총액 1조389억원의 5.7배에 달하는 액수다. 조만간 시작될 11차 SMA에서 미국이 무리한 액수를 요구해 온다면 국내 여론 악화와 한·미 관계 경색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해 우리 측과 방위비 분담금에 관해 논의했을 때 구체적인 액수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만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볼턴 보좌관이 방한했을 때 원칙적인 면에서 의견 교환을 했지만 구체적인 액수 협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분명한 것은 합리적인 수준의 공평한 분담금을 향해서 서로 협의해 나간다는 공감이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 역시 “협상을 진행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2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강 장관 등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과 연쇄 면담을 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들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면담 시간의 절반 이상을 분담금 문제에 할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리뷰’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글로벌 리뷰는 해외 미군 주둔비용 분담의 새 원칙을 정하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다. 미군 주둔국의 방위비 분담액이 너무 적다는 인식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글로벌 리뷰를 곧 마무리하고 한국에 11차 SMA 협상 개시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어느 정도의 액수를 제시할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인 규모는 협상이 시작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각료회의에서 “우리가 한국에 쓰는 비용은 50억 달러”라고 말한 것으로 미뤄 미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우리에게 50억 달러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거세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나선다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부로서도 예년의 인상폭을 능가하는 분담금 액수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분담금은 지난해보다 8.2% 인상된 규모다. 차기 협상에서 인상 폭이 배 이상으로 커진다면 국내 여론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계속 우리 정부를 압박할 전망이다. 마크 에스퍼 신임 미 국방장관이 8월 10일 전후로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정 장관을 만나 분담금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스퍼 장관은 앞서 상원 인준청문회에서도 ‘부자’ 동맹국을 압박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