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60년대 한일 청구권협정 협상 당시 작성된 외교문서를 공개하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청구권협정으로 종결됐다는 억지 주장을 다시 내놓았다. 하지만 일본이 공개한 문서는 새로운 게 아니라 한국 대법원도 이미 검토했던 내용이고, 특히 ‘배상’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 배상이 종결됐다는 일본 측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 외무성은 29일 출입기자단에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작성된 ‘대일청구요강’과 의사록을 공개하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의 주장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보도했다.
대일청구요강은 1965년 한국 정부가 일본에 제시한 것으로 공개한 부분에는 “피징용 한인의 미수금과 보상금 및 그 밖의 청구권 변제를 청구한다”는 내용이 있다.
외무성은 1961년 5월 10일 이뤄진 협상단 소위원회 교섭 의사록도 공개했는데, 문건에는 ‘개인에 대해 지불받기를 원한다는 말이냐’는 일본 측의 질문에 한국 측은 “국가로 청구해 국내에서의 지불은 국내 조치로서 필요한 범위에서 한다”고 답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 대표가 “강제적으로 동원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에 상당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언급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일본 외무성은 이런 협상을 토대로 체결된 청구권협정이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일본이 공개한 문건은 ‘보상’의 해결만 확인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강제징용이라는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 청구권도 함께 소멸됐다는 일본 측 주장의 근거로 인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청구권협정 체결 전 실무진 간 협상 내용이라 최종적이고, 공식적인 정부 입장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정부는 즉각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 외교부는 30일 “우리 대법원의 2018년 판결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정부는 이런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공개한 협상기록은 이미 공개된 자료로 대법원도 심리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고려해 최종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일본이 회의록의 일부분만 인용해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의록 전체를 읽어보면 한국은 불법적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한 것이지,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하라는 취지가 아니었다”며 “이런 회의기록을 갖고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히 일부의 내용을 통해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도 “강제징용 과정에서 발생한 조선인에 대한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담기지 않은 내용”이라며 “일본이 공개한 문건은 기존 청구권협정 내용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도 해당 문건이 새로운 게 아니라는 점을 시인했다. 스가 요시히데(사진)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외무성 문서는 이미 공개됐던 것으로, 새로운 자료를 공개한 건 아니다”면서 “일본으로선 한국에 대해 국제법 위반 상태의 시정을 포함한 구체적 조치를 조속히 강구하도록 요구하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