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 도발 닷새 만에 군수공업부 1명 제재

입력 2019-07-31 04:09

미국 재무부가 29일(현지시간) 베트남에서 외화벌이를 해 온 북한 군수공업부 소속 30대 남성 1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시차를 고려하면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닷새 만의 제재다. 이 남성이 속한 북한 군수공업부는 핵·미사일을 담당하는 부서로 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외화벌이에 개입한 인사를 제재 대상으로 올린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사 1명만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북·미 실무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저강도 제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홈페이지에 올린 ‘베트남에 기반을 둔 대량살상무기(WMD) 기관 대표 제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군수공업부의 김수일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군수공업부가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의 주요 측면에 관여하고 있으며 제재 대상인 조선노동당 산하 단체라고 설명했다.

1985년 3월 4일생인 김수일은 군수공업부와 연계된 경제·무역·광업·해운 관련 활동 수행을 위해 2016년 베트남 호찌민시에 배치됐다. 그는 올해 초까지 북한 내 생산물을 수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 원자재를 포함한 여러 제품의 수출과 수입에 관여했으며 선박 대여업에도 손을 댔다. 그는 또 베트남 제품을 중국과 북한 등에 수출한 책임도 있다고 재무부는 설명했다. 시걸 맨델커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은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적인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는 이들에 대한 기존의 제재 이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이번 제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하고 북·미 실무협상도 재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고위인사가 아닌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30대 남성 1명을 제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재무부는 이번 제재가 대통령 행정명령 13687호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1월 발표된 13687호는 북한 정부와 조선노동당 당국자 등을 포괄적으로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번 제재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취해진 제재가 아니라 기존 제재의 이행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번 제재를 부처 간 역할 분담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과 협상에 나서기 때문에 제재에 미온적인 국무부와 달리 재무부는 제재에 대해 원칙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결국 재무부의 뜻대로 제재가 가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다음 달 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일정을 거론하며 “나는 내일 낮에 아시아로 향한다”면서 “며칠간 방콕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큐빅 퍼즐’을 풀 수 있도록 실무협상이 곧 다시 시작되길 바란다”면서 “창의적인 해법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큐빅 퍼즐’에 비유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논의되고 있거나 계획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유에 대해선 “경제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구매가와 판매가 간에 큰 차이가 있었다”면서 은유적으로 북·미 간 인식차를 설명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