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경제적으로 발전한 국가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할 것을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내로 이 문제와 관련해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면서 시한을 못박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인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악용해 시장 개방 의무 등을 피한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다.
문제는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꼭 집은 12개 국가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튄 것이다.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개도국 특혜 중단 주장이 터져 나오면서 ‘미·일 쌍끌이 파고’에 우리 통상이 더욱 험난한 상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의 개도국 지위 개혁’이라는 주제의 지시문서를 USTR에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서에서 “WTO는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구식의 이분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일부 WTO 회원국이 불공평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깃은 중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전 세계 수출의 13%를 차지하고 있고 1995년 이후 2017년까지 국제시장의 수출 점유율이 5배로 증가했다”고 했다. 또 “중국의 수출이 저임금 제조업에 따른 제품에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첨단기술 제품 수출에서도 현재 세계 1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트위터에도 “WTO는 망가졌다. 세계의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며 WTO의 규정을 피하고 우대를 받고 있다”면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 10위권에 드는 브루나이와 홍콩, 쿠웨이트, 마카오, 카타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7개국도 문제 삼았다. 주요 20개국(G20)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한국과 멕시코, 터키도 지목했다.
정부는 현 상황에서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은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개도국 지위에서 제외될 경우 농업 분야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줄곧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받아오던 관세율 등 특혜를 박탈당할 수 있다. 직불금을 비롯한 각종 농업 보조금 운영에도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 미국이 추가로 양자간 무역협상을 요구하면 WTO 규정을 근거로 농업 부문 보호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미국은 그동안 개도국 지위와 관련 WTO 회원국들이 현재 누리는 특혜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면서 “현재 적용되는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은 차기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세종=신준섭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