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돗물시민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에서 보도자료가 하나 왔다. 이 시민단체에 따르면 인천의 붉은 수돗물 사고가 5월 30일 발발한 이후 두 달 가까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67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생수로 음식 조리와 빨래를 하는 등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다. 인천시와 환경부가 청라·검암 등 일부 지역에 공급되는 수돗물은 정상화라고 선언했지만 주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 사태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많은 주민들이 붉은 수돗물(赤水) 사태 이후 아직도 불편을 겪고 있으며 당국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5월 30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 서구 지역에서 최초로 적수 민원이 접수되면서 알려졌다. 사고 발생 나흘 후인 6월 2일부터는 영종 지역, 15일이 지난 13일부터는 강화 지역에서까지 민원이 발생했다. 이 사태로 1만여 가구가 피해를 보았고 피해 민원도 2만3000건을 넘었다. 이후엔 서울 문래동과 전북 익산에서도 적수와 관련된 민원이 제기되는 등 전국이 붉은 수돗물로 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환경부는 지난달 정부원인조사반을 꾸려 현장 조사를 벌이며 원인 점검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이번 사태는 공촌정수장에 원수를 공급하는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이 전기 점검으로 가동이 중지돼 인근 수산·남동정수장 정수를 수계전환해 대체 공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수계전환이란 밸브를 개방해 정수장 간 급수 구역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수계전환 과정에서 평소 2배의 강한 유속으로 물의 흐름이 역방향으로 바뀌면서 관 내부의 물때 및 침적물이 탈리(脫離)돼 물이 오염됐다.
한 번 시작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수돗물이 사고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했다. 수질 검사에서도 탁도·철·잔류염소 등의 농도가 기준치를 만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식수는커녕 빨래에도 사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영유아를 기르고 있는 주부들의 입장에선 이런 물을 도저히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번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바로 수계전환 때 단수만 실시했어도 이런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런데 왜 단수를 하지 않았을까. 한 정부 관계자는 “단수로 인한 민원 제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물 공급이 끊어지면 지역 주민들과 공장에서 이에 대한 불만 민원이 많이 접수된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여기에 더해 최근까지 이 지역에선 단수 없이 계속해서 수계전환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이상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 무심코 단수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작은 민원 걱정과 “이번에도 잘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큰 국민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의미다.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 더 있었다. 김광용 인천시 기획조정실장은 지난달 27일 열린 인천 수돗물 사태 재발 방지 대책 토론회 때 “문자메시지 하나만 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수계전환을 하면 침전물이 나올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한 통만 보냈어도 주민들은 적수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이런 불신·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정부는 인천시와 함께 수돗물 수질 회복을 위해 해당 정수지 내 이물질을 제거하고 송수관로, 배수지, 급수구역별 소블록 순으로 오염된 구간이 누락되지 않도록 배수작업을 펼친다고 했다. 인천시는 적수 책임을 물어 상수도사업본부장과 공촌정수사업소장을 직위해제했다. 그렇다고 한번 없어진 믿음은 다시 살아나기 힘들다.
한 공무원은 “무언가 일을 할 때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놔두면 꼭 거기서 터지더라”고 했다. 부디 공무원들이 정책 집행을 할 때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을 처리했으면 한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