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동해상에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쐈다. 지난 23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 러시아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종류’의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한 것은 지난 5월 9일 이후 77일 만이다.
북한이 철저히 계산된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한·미를 동시에 압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언제든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판을 깰 수 있다는 압박용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밝혔던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 시점(7월 중순)이 지나자 탄도미사일을 날렸다. 협상이 계속 지지부진하면 언제든 무력 증강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갖추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다만 북한이 아직 미국이 용인할 만한 도발인 단거리미사일만 발사함으로써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5시34분과 5시57분쯤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첫 번째 쏜 미사일은 430여㎞, 두 번째는 690여㎞를 비행했다. 둘 다 정점고도는 50여㎞였다. 합참은 당초 두 미사일 비행거리를 약 430㎞라고 발표했다가 미국 측 정보를 제공받은 뒤 두 번째 미사일의 비행거리를 690여㎞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후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가 새로운 종류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인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지난 5월 이번과 유사한 북한 미사일이 발사된 이후 처음으로 탄도미사일 여부를 확인한 것이다. 이번 발사는 모든 종류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지렛대를 높이려고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알파(α)’를 요구하는 미국식 셈법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으로부터 진전된 안을 제시받지 못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담 후 “2~3주 안에 서로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한 도발은 미국이 셈법을 바꿔 나오라는 메시지”라며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려고 하는데 미국이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사거리가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한 전역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위협 수위가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제재 완화를 위해 미국 설득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남측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측면도 있다.
또 북한이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 도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 16일 미국이 약속을 어기고 한·미 연합훈련을 하려 한다며 “북·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남측의 쌀 5만t 지원 계획도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아 거부했다.
중국·러시아 연합 공중훈련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서 실시되고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한 데 이어 북한까지 군사적 압박을 높여 한반도의 외교·안보 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김경택 손재호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