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직면한 외교·안보 정세가 사면초가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장기화될 조짐인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 북한마저도 25일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대화 국면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격랑에 휩싸이면서 문 대통령의 고심도 깊어지게 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회의를 연 뒤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가 새로운 종류의 단거리탄도미사일이라고 제원을 꽤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의 행위는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서 강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상임위원들은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과 관련해서도 한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했고, 호르무즈해협에서 민간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했다.
앞서 이날 오전 문 대통령은 상황 발생 즉시 국가안보실로부터 보고를 받았고, 한·미 정보 당국은 구체적인 정보 파악에 주력해 왔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고, 북·미 관계를 중재해야 하는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지난달 30일 판문점 남·북·미 회동으로 해빙 분위기가 돌던 것과 비교하면 채 한 달도 안 돼 북한의 태도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한국 정부의 쌀 지원도 거부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갈등을 해소할 방안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배제하는 추가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되면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는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경우엔 한·미·일 삼각공조에 균열이 커질 수 있다.
러시아는 명백한 영공 침범에도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합동훈련 와중에 KADIZ를 침범했다. 특히 러시아는 독도 영공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 사격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국 공군이 미숙한 비행을 했다며 “유사한 비행이 반복되면 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청와대는 지난 24일 러시아 차석 무관의 말만 듣고 “러시아가 유감을 표명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러시아는 곧바로 입장을 뒤집었다.
중국은 전날 ‘2019 국방백서’를 공개하면서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문제 삼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심각하게 파괴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한·일 갈등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미국은 여전히 관망하는 분위기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과 일본을 연쇄 방문했지만,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방점을 뒀다.
주변국과의 갈등은 어느 한 가지도 쉽게 풀기 어려운 과제여서 자칫 현재 한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 때문에 결국 문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상대국 정상과의 톱다운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당과 보수세력까지 포함해 국민적 단결을 더 공고히 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