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염에 미네랄이 많다.” 한국인이면 익히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금을 두고 미네랄이 많네 적네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만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소금을 판매할 때에 ‘미네랄 풍부’니 ‘미네랄 함유’ 같은 말은 쓰지 못하게 아예 금지시켜놓았다. 비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소금 그 자체가 미네랄이다. 천일염도 소금이다. 그러니까, ‘천일염에 미네랄이 많다’는 말은 ‘미네랄에 미네랄이 많다’는 말이 된다. 이런 엉터리의 말이 어디에 있는가.
황교익TV에서 이 말을 하였더니 일본 인터넷 쇼핑몰에서 미네랄 마케팅을 하는 소금을 찾아내어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세계 어디에든 사기꾼이 있고, 일본에도 있다. 일본 사기꾼의 말도 믿겠다고 하면 믿어도 된다. 그런데, 적어도 내 말이 맞는지 확인을 하려면 일본의 식염 관련 규정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일본은 식염 판매 표시 규정 등의 권한을 식용염공정취인협의회라는 단체에 위임하고 있다. 공식 사이트(www.salt-fair.jp)에 의하면, 2019년 현재 176개 업체 및 단체가 가입되어 있으며 등록 상품이 1188개이다. 일본에서 소금을 제조·판매하는 업체 또는 단체 대부분이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이 사이트에 가서 내 말이 맞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메뉴 바에서 ‘규약의 개요’를 클릭하시라.
한국 천일염에 많다고 ‘주장되는’ 미네랄은 마그네슘 칼륨 칼슘 같은 것들이다. 국제식품규격(Codex)은 식염의 규격으로 염화나트륨이 97% 이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식용 소금으로 쓰려면 위의 기타 미네랄이 아무리 많아봤자 3% 이내여야 한다. 마그네슘 칼륨 칼슘 등 소금에 든 기타 미네랄이 건강에 좋다면 굳이 국제식품규격에서 함유량을 제한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겠는가. 국제식품규격에 참여하는 세계 식품 과학자들이 ‘미네랄 바보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소금을 녹여서 짠맛을 얻는 음식의 경우 국제식품규격의 소금이기만 하면 된다. 소금 알갱이가 살아 있는 상태의 요리면 소금이 음식 맛에 좀 더 다양한 영향을 주고, 그래서 소금 알갱이 모양이 중요하다. 가는 소금보다 굵은 소금이 훨씬 흥미로운 맛을 낸다. 굵은 소금도 여러 질이다. 네모 모양의 단단한 소금도 있고 평평한 모양의 무른 소금도 있다. 이에 따라 소금의 가격이 달라지는데, 대체로 소금의 알갱이는 큰데 가볍게 부서지는 소금이 비싸다. 프랑스 게랑드 꽃소금이 그런 소금 중의 하나이다. 한국 천일염이 세계 명품이 되려면 알갱이 모양에서 특이함을 보여야 할 것인데, 아쉽게도 한국 천일염은 세계 명품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동안의 정부 노력으로 벌써 세계 명품이 되고도 남았다.
천일염과 관련해 신묘한 것은 이명박정부가 한국 천일염을 세계적 명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헛된 주장을 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 헛된 주장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헛된 주장에 우쭐해져 있었다. 한국 천일염을 넣은 한국 음식이 세계적 명품 반열에 오를 듯이 상상하였다. 천일염을 손에 드는 순간 우리도 세계적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소금처럼 값싼 식재료가 없다. 천일염 20㎏ 한 포대면 한 가족이 몇 년을 먹는다. 천일염은 가장 값싸게 명품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니다, 이명박이 해주었다.
천일염의 거짓 신화는 깨졌다. 그럼에도 미련을 두는 분들이 있다. 생산자나 판매자이면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소비자일 뿐인데, 이 거짓 신화를 붙들고 버틴다. 천일염 문제를 지적하면 욕부터 한다. 이 고단한 한국에 살면서 어쩌다가 값싸게 명품 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이를 빼앗지는 말아달라는 호소일까. 거짓말이 때로는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힘겹게 겨우 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일은, 비정할 수 있다. 정말이지, 비정할 수 있다. 비정하여 미안하다. 비정해도 내 직업이다.
엊그제 방송을 보니 해양수산부의 천일염 담당 공무원인 듯한 자가 이렇게 고백하였다. “국내 천일염은 국제 기준에 미달하여 (수출도 못 합니다).” 이제 와서, 수출도 못 하는 소금이라고, 세계 명품이 될 수 있다고 한 그 입으로, 비정하게, 아니 비겁하게, 얼굴도 이름도 내놓지 않고 말하였다.
황교익(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