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7주째 이어지는 홍콩에서 시위대를 겨냥한 ‘백색(白色) 테러’가 처음 등장했다.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각목 등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폭행해 최소 45명이 부상을 입었다. 테러 배후에 친중파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반(反)중국 대 친(親)중국’의 극한 대립 구도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들은 22일 전날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흰 상의에 검은 하의로 복장을 통일한 건장한 남성의 무리가 갑자기 들이닥쳐 금속 막대기와 각목 등을 휘두르며 시민들을 무차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소셜미디어에는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급속도로 공유됐다. 일부 시민들은 테러단의 무자비한 폭행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들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테러단은 정차한 전철의 객차로 피신한 시민들을 쫓아가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가해 무리 중 일부는 테러를 기념하듯 자신들의 단체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특히 이들이 임산부로 추정되는 여성을 마구 폭행하는 동영상도 유포되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아비규환의 사태는 홍콩 경찰들이 도착할 때까지 무려 30분간 계속됐다.
현지 언론들은 테러단이 주로 검은 옷을 입은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들을 집중 공격했다며 이들 배후에 시위에 불만을 품은 친중파가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권력자나 극우세력이 반정부 세력이나 혁명운동에 대해 행하는 탄압을 의미하는 백색 테러일 수 있다는 것이다. SCMP는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들 테러단이 중국 폭력조직인 삼합회 조직원들로 보인다고 전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과격해지면서 지난 19일 ‘홍콩 독립’ 주장 단체 회원들이 고성능 폭발물을 소지하다 적발되는 등 홍콩 정부와 친중파 측에 역공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사태로 여론이 반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중국 정부는 시위대의 폭력 행위를 부각하며 맹렬히 비난했다. 일부 시위대가 중국 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에 몰려가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는 등 훼손한 행위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일부 과격 시위자의 행위는 일국양제 원칙의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도 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국양제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며 민족감정을 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