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민세진] “딸아, 군대 가자”

입력 2019-07-23 04:03

중학생, 초등학생 딸 둘이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녀차별이란 모르고 커온 아이들이다. 유일하게 차별로 인식된 것이라면 초등학교 출석번호가 남자는 1번부터, 여자는 51번부터 시작하는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작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시정됐다. 30년 앞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온 필자로서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많은 것이 바뀌고 평등해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10년 후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때의 우리나라가 아이들이 지금까지 느낀 것처럼 평등할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선다.

영국의 경제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국제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전후해 유리천장지수(glass ceiling index)를 발표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에 대해 교육 수준, 경제활동 참여, 임금 등 10개 분야의 평균적 남녀 차이를 지수화한 것이다. 유리천장이란 여성이 직장 등 위계질서가 있는 집단 내에서 위로 올라가는 데 한계에 부닥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올해 3월 발표된 유리천장지수는 제7차 결과였다. 우리나라는 부동의 꼴찌를 기록해 오고 있다. 바로 위의 일본과 터키는 순위가 뒤집힌 적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순위는 굳건히 바닥이다. 지수의 격차를 보건대 가까운 미래에 꼴찌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 때문에 매년 3월이면 한바탕 이슈가 되긴 한다. 아마 내년 3월에도 또 얘기가 나올 것이다.

유리천장지수를 구성하는 여러 분야 중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것은 임금격차, 관리직의 여성 비율,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 등이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여자의 임금은 남자보다 34.6% 적다. 이 분야에서 가장 양호한 벨기에가 3.7%, OECD 평균이 13.8% 차이를 보인다. 다른 나라라고 임금격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여자가 평균적으로 남자의 70% 남짓밖에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여자로선 참 비애스러운 일이다. 사다리의 위쪽에 여자가 많지 않은 것도 사다리를 오르는 의욕 자체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꾸준히 높아져 왔고 동시에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다. 일하는 여자가 증가하면 출산율은 떨어지게 마련 아니겠나 할 수도 있지만, OECD 국가들을 놓고 보면 여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나라들의 출산율이 더 높은 성향을 보인다. 여자가 일한다고 꼭 아이를 덜 낳으란 법은 없는 것이다.

유리천장의 문제가 해마다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음에도 상황을 쉽게 개선할 수 없는 이유는 문화적 관성이 무섭기 때문이다. 전통적 성 역할 관념이 강하다는 우리나라, 일본이나 OECD 국가 중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유리천장지수에 고정적 하위권을 이루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가 성 역할의 관념이 약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더 빨리 관성을 깰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다소 엉뚱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방법은 여자도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이다.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점점 심각해지는 남녀 갈등의 바닥에도 병역의무 차등이 존재한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필자를 선호하는 기업의 조직문화가 먼저 바뀐다면, 한반도에 평화가 빨리 정착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런저런 문제와 갈등을 고려할 때 병역의무 확대는 우리나라에서나 쓸 수 있는 묘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출산 및 육아의 부담을 남자에게 동등하게 지우는 방안도 더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남자에 대한 육아휴직급여 수준은 최근 유리천장지수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높다.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들이다 보니 오히려 이러한 제도들은 많이 보완된 것이다. 그러나 육아휴직은 신청자에 한해 주어진다. 출산한 여자가 90일의 출산휴가를 쓰는 것처럼 출산한 배우자를 둔 남자가 비슷한 기간의 휴가를 반드시 쓰도록 하는 수준의 정책 강화가 아니고서는 고질적인 유리천장도, 저출산의 늪도 깨고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진짜 위기라 생각한다면 바꾸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