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국내의 일본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안을 제언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갖고 가서 다퉈보자는 제안도 있었고, 제3국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일본의 요구에 지금이라도 응해서 일단 시간을 벌자는 주장도 나왔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기금 조성안과 관련해서는 기존 정부안 ‘1+1’(한·일 기업 참여)보다 일본이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인 ‘2+1’(한·일 기업+한국 정부), ‘1+1/α’(한·일 기업과 한국 정부가 별도로 구제), ‘2+0’(한국 정부·기업이 구제하되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안이 제시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8일 개최한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 관계’ 포럼에서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같은 사안(징용 배상)에 대한 양국 최고법원 판결이 불일치해서 벌어졌으니 제3자에게 묻는 게 자연스러운 해법이 될 수 있다”며 양국의 ICJ 공동 제소를 제안했다.
이 교수는 “ICJ에 제소하면 한국 내 일본 기업 압류자산의 현금화를 중단시킬 수 있고, 일본도 보복 조치를 철회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4년 정도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 구제의 방법을 법리적으로 다퉈보자는 것이어서 지더라도 후폭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ICJ 재판관 구성이 한국에 불리하다는 일각의 우려도 일축했다.
유의상 전 외교부 동북아1과장은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 제3국 중재위 요청에 응할 것을 제안했다. 일본이 제시한 답변 시한(18일)을 넘겨서 응하더라도 중재위 구성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유 전 과장은 “중재위가 구성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해결 방안을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1+1/α’안을 제시했다. 한·일 기업이 함께 기금을 설치하는 ‘1+1’ 트랙과는 별도로 한국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방안이다. 남 교수는 “특사 파견으로 이 안을 제시해 협상 국면으로 유도하자”고 했다.
반면 이 교수는 “기금 조성안은 한국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들어가지 않으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2+1’안이 아니면 기금 방식으로의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유 전 과장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혜택을 받은 국내 기업들이 내는 돈으로 정부가 피해자 구제 조치를 하되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자고 제안했다. ‘2+0’이라 할 수 있는 이 안은 일본이 공식적으로 배상에 개입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형태여서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추가적인 보복이 전방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남 교수는 “일본이 향후 문재인정부의 중점 산업정책인 수소경제, 인공지능(AI), 로봇, 태양광 관련 사업 등을 조준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치적 압박도 병행해 대북 제재 유지를 요구하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를 견제하는 식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최근 보복 조치에 담긴 일본의 의도를 두고 “한국 산업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상시적인 ‘통상무기’를 이번 기회에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