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기업들이 줄줄이 비상체제에 돌입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에 이어 GS도 장기적인 비상계획 마련에 나섰고, SK하이닉스는 소재 수급 문제를 풀기 위해 대표이사가 직접 일본으로 향했다.
허창수(사진) GS 회장은 17일 서울 강남구 GS타워에서 열린 3분기 GS 임원모임에서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경제지표에 대한 정확한 예측 노력과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며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우려가 큰 만큼 GS도 철저하게 대비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주말에 계열사 사장들에게 ‘컨틴전시 플랜(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는 비상계획)’을 주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유·에너지·건설·리테일 사업 위주인 GS는 현재 일본이 규제하고 있는 반도체 핵심 소재들과 큰 관련은 없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유·석유화학 분야는 이미 미·중 무역 분쟁으로 실적이 나빠졌기 때문에 악재가 겹치면 충격의 강도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추가 규제안이 나오거나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 제외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커지면서 업계 위기감이 고조된 영향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이기도 한 허 회장은 “미·중 무역 분쟁이 지속 중인 동시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새로이 진행되고 있으며 유가, 환율 등 경제지표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면서 “반도체, 정유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올해 상반기 실적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고,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전년 대비 크게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어 “멀리 내다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의 사업구조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에 대한 투자와 연구 및 기술개발을 지속해 미래의 조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사장은 일본에서 주요 협력사의 경영진과 만나 이번 수출 규제로 영향을 받는 원자재 수급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말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던 삼성은 이번 주 중 IM(정보기술&모바일)·CE(소비자가전) 부문 경영전략 회의를 연다. 앞서 이 부회장이 주문한 컨틴전시 플랜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산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대신 중국산을 수입하는 작업도 가시화되면서 공정 적용에 성공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종의 ‘탈일본’ 움직임이다. 일부 업체는 일본산 외 대만, 중국, 국산 에칭가스 등을 도입하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달 초 LG디스플레이는 국산뿐만 아니라 중국산 에칭가스를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고, 삼성전자 등도 다른 국가의 에칭가스를 들여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