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방한하면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연한 접근’을 강조해온 비건은 북·미 실무협상 가동을 위해 우리 측 정부 당국자들과 연쇄적인 접촉을 갖는다. 일각에서는 한·미가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와 남북 경협 간의 교환을 담은 협상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오는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또다시 미국에 ‘올바른 셈법’을 들이밀었다.
비건은 2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28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가진 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만날 예정이다. 비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우리 측과 북·미 비핵화 협상 상황을 공유하고, 실무협상 가동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 양측은 북한을 실무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묘수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관측된다.
연쇄적인 접촉 이후 비건은 직간접적으로 북·미 실무협상 가동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지난 19일 “북·미 양측 모두 협상에 있어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며 북한과 접점을 모색할 여지를 시사했다. 또 최근 북·미 정상 간 ‘친서외교’를 통해 대화 분위기가 조성됐고, 문 대통령도 전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실무협상에 응할 것을 촉구하는 등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가 무르익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비건이 방한 기간 판문점 등지에서 북한 측과 접촉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6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떠나기 전 이번 방한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비건이 최근 언급한 ‘유연한 접근’은 북한에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 등을 요구하고, 대가로 남북 경협 추진 등을 제시하는 대안 정도로 보인다”며 “비건이 우리 측 당국자를 연달아 만나는 것도 대안을 세부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비건이 실무협상 개최를 원하는 미국의 기조를 반영한 대화 메시지를 방한 기간에 내놓을 것 같다”며 “북한으로 공이 넘어갔지만 친서외교 등을 봤을 때 다음 달엔 실무협상 개최가 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이날도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실질적인 카드를 내놓을 것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의 담화를 통해 “최근 미국이 말로는 조·미(북·미) 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 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며 “조·미 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지난 20일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대화 추세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 협상 복귀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