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무에 싸여 섬처럼 펼쳐진 지리산은 호쾌하기 이를 데 없다. 소나무 등걸에 앉은 독수리 두 마리의 눈매는 찌를 듯 날카롭다. 이런 그의 붓질을 두고 동료 화가는 “싸움하는 투사와 같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정종여(1914~1984). 그는 1940년대 해방 공간에서 최고 경지의 실력을 보여준 한국화가였다. 그럼에도 월북했다는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거세되다시피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상적 대립, 여성에 대한 편견, 채색화에 대한 홀대 등 여러 이유로 한국미술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미술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갖고 있다. 서울 중구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 Ⅰ: 절필시대’전이 그것이다. 월북화가 정종여와 임군홍(1912~1979)을 비롯해 채색화가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등 6인이 초대됐다.
일본 유학파 출신인 정종여는 수많은 실경산수와 풍경 스케치를 남겼다.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의 전통을 계승해 “한라에서 백두까지 담고자” 전국을 답사하며 그린 가야산, 지리산 등 산수화에서 놀라운 필력을 보여준다. 이응로에 못지않게 한국화의 큰 획을 그은 것으로 미술사가들은 평가한다.
임군홍은 일제강점기 총독부 주최의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에 거듭 입선하며 입지를 굳힌 서양화가다. 1939년에 중국에 건너가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 현지를 여행하며 유적지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 역시 6·25전쟁 중 월북하면서 잊힌 작가가 됐다. 월북 전 아내와 두 자녀를 화폭에 담은 ‘가족’은 가장의 부재를 증거하는 아픈 작품이다. 테이블 위 도자기들은 가장이었던 임군홍이 수집한 것인데, 가족은 이걸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정찬영과 백윤문은 선전에서 채색화조화와 채색인물화로 두각을 나타냈던 작가들이다. 각각 이영일과 김은호의 제자로 ‘근대화단의 신세대’로 등장했으나 해방 후 채색화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홀대하는 바람에 설 자리를 잃었다.
이 가운데 정찬영은 여성화가라는 이중의 굴레가 덧씌워졌다. 작품 ‘공작’은 동양화로 이처럼 섬세하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남편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1세대 식물학자 도봉섭이다. 결혼 조건으로 그림을 계속 그리게 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예술혼에 불탔던 그녀는 결혼해서도 전람회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하지만 33세 때 둘째 아들을 잃으면서 그 충격으로 절필을 했다. 1940년대 남편이 준비한 식물도감에 넣을 식물세밀화를 그리기도 했으나 남편의 납북 탓에 화가 인생을 접어야 했다.
백윤문은 미인도에 능했던 스승 김은호와 달리, 남성의 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화로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남성들의 윷놀이를 그린 대표작 ‘건곤일척’(1939)을 볼 수 있다.
이규상과 정규는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에 참여하며 해방 후 현대미술 화단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두 작가 모두 각각 50세, 49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절필시대는 당시 많은 화가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절필할 수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미완의 예술세계를 주목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