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국회의원 수를 좀 늘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에게 선거제도 개편 등 패스트트랙 문제 해법으로 의원 정수 확대를 묻자 손사래를 쳤다. “국민이 난리가 날 것이다. 지금처럼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회에서는 절대 국민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여야가 의원 증원을 ‘히든카드’로 숨겨두다가 내년 총선 임박해서 꺼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기간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어쨌거나 지금 국회에서는 의원 정수 확대는 일종의 금기어다.
전체 의석을 300석으로 고정하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면서 지역구를 225석으로 축소하는 패스트트랙 안이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는 건 여의도의 공공연한 상식이다. 1석 줄이는 것도 어렵다는 지역구를 지금보다 28석이나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 지역구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 ‘내 지역구가 통폐합 대상’이라는 구체적 현실로 돌아올 때 패스트트랙은 급브레이크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일찌감치 제시된 정공법이 의원 증원이었다. 이미 문희상 국회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 국회 원로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저명한 정치학자들이 제시한 안이다.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에 합의한 선거제도 개편 합의문에도 ‘의원 정수는 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전체 국회 예산을 고정한 채 의원 수를 늘리고, 세비와 특혜 등을 줄인다면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당과 제1야당은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국회’는 스스로의 몰골 탓에 차마 의원 수를 늘려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국회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충돌 이후 동물국회에서 식물국회를 거쳐 지금은 ‘반쪽 국회’인 상태다. 자유한국당은 국회에 나오는 것인지, 안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선별적 등원’이라는 희한한 전략으로 스스로를, 또 국회를 희화화했다. 스스로를 우습게 만들면 남도 나를 우습게 여긴다. 선출된 적도 없는 청와대 비서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답한다며 국민이 선출한 입법부를 향해 호통치고 “국회가 대답하라”고 훈계하는 이유다. ‘이게 다 국회 때문’ 식의 비판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간다. 여야 의원들도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세비 반납 등의 대책을 경쟁하듯 내놓으면서 분노에 편승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6일 “국회의원이 된 이후 의원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지만, 이제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한술 더 떠서 국회의원 정수를 10% 줄이자고 한다. 입법부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누워서 침 뱉기’ 식 반성문이다.
국회가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는 민주주의의 대표 기구이고, 못나고 일그러진 국회도 국회다. 의원들을 누가 선출해 국회로 보냈는가. 국민이다. 국민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고작 저런 이들을 대표로 뽑아 보냈다는 것인가. 입법부에 대한 지나친 멸시와 혐오는 결국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멸시, 국민 선택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청와대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의회는 강하고 건강해야 한다. 못난 국회라고 돌을 맞고 있지만 20대 국회는 국민 뜻을 받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가결한 국회이기도 하다.
최장집 교수는 지난해 1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대통령 권력의 비대화를 견제하고 의회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온건한 다당제를 목표로 지금보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때리기’가 일상이 되고, 위축된 국회가 스스로를 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지금 다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국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