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시로 녹여낸 시편… 한글로 그 맛을 살리다

입력 2019-06-28 00:07
‘성영역의 초고’를 쓴 오경웅 선생(왼쪽 사진)과 이를 번역해 ‘시편사색’을 펴낸 송대선 영파교회 목사. 미시간대 홈페이지 캡처, 꽃자리 제공

시편에서 중국 고전의 향기가 느껴진다면 아마 다들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하지만 ‘시편사색’을 펼쳐든 순간, 히브리 노래인 시편 고유의 아름다움에 삼경과 사서, 도덕경과 장자에 이르기까지 동양적 사유의 깊은 맛이 어우러져 다가오는 색다른 경험을 누려볼 수 있다.


‘시편사색’의 저자는 중국의 유명한 법철학자 오경웅(吳經熊·우징숑) 선생. 그는 1937년 중국 상하이에서 일본군에 의해 사실상 감금상태로 지낼 무렵, 시편 번역을 시작했다. 시편을 삼언, 사언, 오언, 칠언 등 중국 고시체 형식에 따라 번역하면서 현실에서 몰려오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이내 홍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가 번역한 시편은 흘러 흘러 당시 장제스 총통에게까지 전달됐다. 장 총통은 기독교 신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오 선생의 시편에 매료돼 성경 번역을 부탁했고 직접 교정까지 맡았다. 이렇게 완성된 책이 바로 ‘성영역의 초고(聖詠譯義 初稿)’다.

이 책을 번역한 송대선 영파교회 목사는 1990년대 중반 오 선생의 시편을 처음 만났다. 그의 동양적인 영성을 풀이한 책 ‘내심낙원’을 읽다 주해에 달린 인용구를 통해서였다. 송 목사는 최근 가진 북토크에서 “시편을 중국 고전의 흐름 속에서 읽어내고 운율과 뜻을 풀이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독보적이었다”며 “오 선생은 서양의 신학자와 영성가뿐만 아니라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불경까지 끌어들여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냈다”고 매료당한 순간을 회고했다.

이후 중국에서 머무는 동안 다방면으로 이 책을 찾았지만, 손에 넣지 못하다 2013년 우연히 난징에 있던 지인을 통해 책을 얻었다고 한다. 번역가를 찾으려 애쓰다 적임자를 찾지 못하자 아내의 권유를 받아들여 직접 번역을 시작했다. 이미 시편 번역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 선생이 한자로 번역한 시편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다. 그리고 각각의 시에 등장하는 전거와 고사들을 일일이 찾아내 해설을 달았다. 이를 묶어 800여쪽이 넘는 두터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송 목사는 “시편을 우려내 맛깔스러운 맛을 낸 도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전고를 찾다 보니 한 단어 한 단어에서 내는 맛이 이렇게 깊구나, 느낄 수 있었다”며 “서양신학적인 언어로 읽었을 때의 사유와 달리 동양적 언어가 주는 사유들이 편안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시편 한 편 한 편을 따라 읽다 보면, “이 책이 국내에서 발간됐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라는 평가가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