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황교안 대표의 두 모습

입력 2019-06-27 04:01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의 모친상 빈소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나타났다. 일요일이고 밤 10시가 다 된 시각에 황 대표가 조문을 오자 시선이 온통 그에게 쏠렸다. 조문객 대부분이 민주당 또는 진보 진영 쪽 사람들이었는데, 의외로 황 대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황 대표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다가와 악수를 나눴고, 일부는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차가운 인상이라 생각했던 황 대표 모습이 그날은 나쁘지 않았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제1야당 대표 입장에선 시시껄렁해 보였을 법한 ‘저쪽 진영’ 구(區)의원급 사람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데도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눴다. 사진 촬영에도 흔쾌히 응했다. 보통 VIP급 인사들이 빈소를 찾으면 조문만 하고 바로 떠나는 게 통상적이지만 황 대표는 30분 넘게 앉았다가 자리를 떴다. 빈소 한쪽에서 “황 대표가 매너가 참 좋네”라는 얘기가 들렸다. 여성 조문객들은 “얼굴도 잘 생기고 목소리까지 좋다”는 말도 했다.

반면 얼마 전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황 대표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국회 상임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의원인데, 어느 날 황 대표한테 상임위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좀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약속한 시각에 국회 당대표실로 갔는데, 아주 당황했고 불쾌감도 느꼈다고 했다. 황 대표 혼자 있거나, 비서실장 정도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당 핵심 인사들을 줄줄이 앉혀 놓고 ‘보고’를 하라는 듯이 대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 장면이 마치 검사장이 차장검사나 부장검사들을 줄줄이 앉혀 놓고 평검사한테 보고받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또는 의전을 받고 싶어 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게 아니냐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처럼 상반된 두 모습이 현재의 황 대표 모습 그대로일지 모른다. 그가 두 달 가까이 전국 곳곳을 다니며 민심 청취를 하면서 낮은 자세를 배우게 된 반면,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권위주의가 상당히 남아 있을 것이란 뜻이다. 시장에서 아무리 국밥을 여러 번 먹고 서민들과 악수를 나눴어도, 귀족적 이미지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결국 극복하지 못한 묘한 괴리감 같은 것 말이다.

대선 후보는 시대정신을 대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적 매력도 갖춰야 한다. 시대정신이 이념적 지지를 얻어내는 무기라면, 인간적 매력은 골수 지지층을 만들어내고 더 나아가 중도층 또는 무당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요소다. 정치적 내용보다는 인상에 더 관심을 갖는 풍조를 감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나의 삶을 더 잘 이해해줄 것 같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인간적 매력을 갖춘 주자가 국민의 호응을 더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황 대표가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 차갑고 무뚝뚝한 이미지, 권위적 이미지가 우선 느껴지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좋다는 평도 있지만 너무 근엄하게 들린다는 얘기도 있다.

황 대표가 민생 투어를 하면서 서민들과 어울리거나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잠도 자고 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2006년 손학규 현 바른미래당 대표가 경기지사 임기를 마치고 100일간 전국을 돌면서 민생대장정을 하던 것에 비하면 웰빙 수준의 민생 투어였다. 당시 손 대표는 농부들보다 더 농부스러웠고, 노숙자보다도 더 행색이 안 좋을 정도로 진짜 민생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삶을 진하게 체험했다. 그런 뒤에 손 대표는 비로소 대선 주자로 뜨기 시작했다.

황 대표가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지금보다 더 망가지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더 낮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삶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제1야당 대표가 권위를 벗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청와대와 여당이 더 긴장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