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이슈 직면한 게임… “명백한 과잉 처방”

입력 2019-06-28 04:02
‘게임 질병화’ 이슈가 게임 업계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읽히고 있다. 사진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출범식 모습. 공대위 제공

‘게임 질병화’ 이슈는 게임업계에 부정적인 이슈이기만 할까.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문턱에 서자 역설적이게도 게임 산업의 잠재력과 놀이문화로서의 순기능이 새삼 부각되는 분위기다. 게임 질병화가 최근 몇년 사이 긍정적으로 바뀐 게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 기회에 국내 게임 업계의 고질인 사행성 문제를 해결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말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에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코드로 등록했다. WHO는 게임이용장애를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의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위 장애’에 포함했다. 게임을 중독 물질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행동 장애로 우회한 것이다.

게임 업계는 질병화 이슈가 국내에 상륙한 뒤 사회적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이들은 사뭇 달라진 시선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한 대형 게임사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아침 토크쇼에 출연한 프로게이머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중독자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았다”며 “지금은 과거 게임을 즐겼던 이들이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30~40대가 되면서 게임에 대한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게임 관련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게임을 주로 즐기는 20~30대의 표심을 잡을 수 있고, 게임 산업이 4차 산업 혁명의 중요한 축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5년 전과 비교하면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언론 보도도 균형이 생겼다”며 “WHO 질병코드가 발효되는 2022년과 국내에 본격 적용되는 2025년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업계 내부에서는 자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참에 국내 게임의 과도한 사행성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사행성 문제가 집중조명될 경우 청소년 보호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기대와 맞물려 질병코드 국내 도입의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게임 중에는 확률형 아이템에 기반을 둔 과도한 과금 유도로 물의를 빚은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에는 게임사 대표가 게임의 사행성 문제로 국정감사에 출석하기도 했다. 과금을 둘러싸고 이용자들의 원성도 크다. 국내 게임 관련 민원 중 과금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규제 역시 사행성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 내부에서는 사행성을 걷어내고 해외 게임사와 어깨를 견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 문체부, 게임산업협회 등이 참여한 ‘확률형 아이템 관련 청소년 보호 방안(가제)’의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해당 연구가 마무리단계에 있다”며 “늦어도 다음달 초에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