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인의 삶에 구약성경의 율법과 메시지는 어떤 의미일까. 최근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구약학자 크리스토퍼 라이트 교수와 전성민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 지난 14일 이 같은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졌다. 라이트 교수는 제3세계 목회자와 리더들을 발굴·교육하는 랭햄파트너십인터내셔널의 대표로 ‘구약에 나타난 예수, 성령, 하나님’ 등을 썼다. 전 원장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구약 내러티브의 윤리적 읽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저서 ‘세계관적 설교’ 등을 내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구약학자다. 대담은 성서유니온선교회 주최로 서울 서부교회에서 열린 ‘구약 윤리, 오늘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가’라는 주제 특강에 앞서 진행됐다. 대담 외에 라이트 교수의 강연, 전 원장과의 추가 인터뷰를 반영해 재구성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이 성경 말씀대로,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키며 살기는 어렵다. 수천 년 전 구약의 율법과 가르침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라이트 교수=오늘날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을 예수님과 바울은 본 적이 없다. 예수님에게 성경은 구약이었고, 예수 가르침의 근거들 역시 구약에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유익하며, 무엇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성경은 오늘날 우리가 구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구약의 윤리적 유효성과 권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전 교수=라이트 교수님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모델이 된다. 즉 구약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셨던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이해하면,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을 우리 시대에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던 것은 온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셨기 때문이다.
-포스트 크리스텐덤(후기 기독교제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한국에서는 과거처럼 정치 권력을 통해 기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들도 있다.
라이트 교수=어떤 이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 총리가 되거나 대통령이 되고 정부에 많이 진출하기를 바란다. 크리스천 정치인들이 놀라운 일들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좋은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 해도, 각종 유혹과 권력과 부에 흔들리고 타락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구약에는 다윗 기드온 솔로몬 등 인간이 권력 가운데 부패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기독교인이 정치 사회 분야에서 ‘빛과 소금’, 즉 세상의 악과 부패를 막는 소금과 어두움을 밝히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중요하다. 기독교인은 세상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한 발 물러나 있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행정부나 의회 등에 진출한 기독교인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필요하다.
전 교수=단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정치인을 ‘묻지마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나라의 가치엔 보편적인 것도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일반은총을 통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상식적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교회는 상식의 회복이 필요하다. 구약의 지혜 문학은 이러한 보편적 상식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구약성경을 토대로 볼 때 오늘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라이트 교수=겸손함과 온전함, 정의로움이다. 첫 번째 겸손함(Modesty)는 신명기 17장 14~20절, 왕의 법도를 설명하는 데서 나온다. 두 번째로 온전함(Integrity)이다. 사무엘은 사무엘상 12장 1~5절에서 스스로 장부를 공개하고 사람들 앞에 결산 받는 자리로 나왔다. 사무엘은 공적인 자리에 따라오는 이익을 사적으로 취하지 않았고, 부패와 뇌물 문제로 대중을 배신하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헌법상의 제약, 보수조항, 이해충돌방지 등을 통해 지켜지고 있는 가치다. 세 번째 하나님의 기준은 정의였다.
전 교수=시편 72편에도 구약 시대의 정치인이라 할 왕에게 요구됐던 것이 무엇인지 잘 나와 있다. 바로 공평과 정의였다. 정의로운 재판(2~4절)을 해야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사법농단이 있어선 안 됐다.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도와야 했다.(12~14절) 예레미야는 요시야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는 정치를 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모습이었다고 칭찬했다.(렘 22:15~16) 심지어 이방인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에게도 공의로운 정치,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정치가 요구됐다. 이름만 기독교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치를 실현할 정치인을 찾아야 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왜 훌륭한 시민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의 문제 때문에 갈수록 기독교가 지탄받고 있다.
라이트 교수=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교회가 성경이 좋은 시민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가르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정착하고,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내가 있는 그곳, 그 나라의 시민이 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전 교수=세상이야말로 신앙의 실력이 드러나는 장소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고, 이때 필요한 것이 참된 소통을 할 수 있는 상식과 겸손이다. 신학자 리차드 마우가 쓴 책 중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시민 교양’이란 부제가 붙은 ‘무례한 기독교’가 있다. 무례함은 복음을 방해한다. 메신저가 메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