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던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이 진정 국면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미군 무인정찰기(드론) 격추에 대응하는 보복 타격을 막판에 취소하면서 전쟁만은 원치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이란 정권 붕괴를 공공연히 주장해온 행정부 내 강경파를 적절히 견제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경제적 고통을 가해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다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명 피해 없이 물리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사이버 공격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한다는 궁극적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캠프데이비드 별장으로 떠나기 전 기자들에게 “모두가 나를 두고 전쟁광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나더러 비둘기파라고 한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상식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상식이야말로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이란의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발사대 등 시설에 대한 공습을 승인했다가 실행 직전 취소했다. 이란인 사망자가 150여명으로 추산된다는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의 보고를 받고 “비례적인 대응이 아니다”며 마음을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무인기를 격추했다는 이유로 150명의 인명을 살상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공격을 벌이면 재선은 물 건너간다”는 터커 칼슨 폭스뉴스 앵커의 조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이란 공습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인물은 볼턴 보좌관이었다. 던퍼드 의장은 신중론을 제기하며 공습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던퍼드 의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공습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던퍼드 의장이 아주 훌륭한 일을 해줬다. 그는 멋진 사람이자 멋진 장군”이라며 “볼턴 보좌관은 분명히 매파이지만 나에게는 반대쪽 사람들도 있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바로 나”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사석에서 볼턴 보좌관 등 강경파를 거론하며 “그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몰고 가려 하는데 아주 역겹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향후 대(對)이란 대응은 경제제재 강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캠프데이비드에서 이란 관련 대책회의를 한 뒤 트위터에 “24일 이란에 추가로 대규모 경제제재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군사 자산에 직접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이버 공격도 검토 중이다. 미 사이버사령부는 오만해 유조선 피격 사건을 배후 지원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란 정보기관과 미사일 발사 통제 시스템 등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실시했다고 NYT와 AP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란을 압박해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계획이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취소하기 전까지는 어떤 대화도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공습을 취소한 것 자체가 뾰족한 묘책이 없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