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주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상가건물. ‘이태원에서 가장 낮은 곳’이란 문구가 적힌 계단을 올라 3층에 다다르니 예배실이 나타났다. 평일엔 북카페와 갤러리로, 주일엔 예배공간으로 변신하는 기독교영성나눔공간 ‘레 미제라블’이다. 대로변 상가건물임에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 문을 여니 20여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대부분 2030세대로 영유아 자녀를 안고 예배에 참여한 부부도 여럿 눈에 띄었다. 안영술(40) 산돌교회 목사가 강대상의 종을 울리자 성도들은 떼제공동체의 기도와 찬송을 제창하며 예배에 점차 녹아들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림형석 목사) 소속인 이 교회는 부부 사역자인 안 목사와 김효경(40) 전도사가 이끌고 있다. 교회력에 맞춘 예배를 드리는 등 예전(禮典)에 충실한 예배로 시종 엄숙한 분위기였으나 찬양과 교제 시간엔 활기가 넘쳤다. 몸을 움직이며 복음성가를 부르거나 눈을 감고 묵상하는 등 각자 자유롭게 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에선 출산을 앞둔 성도 가정을 위해 전 교인이 축복기도를 하고 아기용품을 선물하는 ‘베이비 샤워’도 진행했다. 안 목사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란 마음으로 성도들과 삶을 공유하려 노력한다”며 “우리는 도심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적 교회를 추구한다”고 소개했다.
문화가 있는 ‘도심 속 기도처’
산돌교회는 2011년 안 목사가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에서 뜻이 맞는 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시작됐다. 예배 모임이 발전해 교회가 된 셈이다. 교회 이름 산돌은 ‘살아있는 돌’이란 의미로 베드로전서 2장 4~5절을 따서 지었다.
당시 교회 구성원은 안 목사가 군종장교 시절 중국 소수민족 교회 개척을 위해 이끌었던 단기선교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성도들은 안 목사 가정과 공동생활을 하거나 예배에 참여하며 ‘공동체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한반도국제대학원대 등에서 예배를 드리며 ‘건물 없는 교회’를 추구했던 교회는 1년 전 지금의 자리로 예배처소를 옮겼다. 교회 기도처이자 선교센터로 3년여 전 설립된 이곳에서 매주 예배를 드려 성도들의 교회 사역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당초 ‘도심 속 기도처’를 목적으로 마련한 공간이었으나 교회는 이곳을 카페이자 갤러리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단장했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이들, 기독교와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을 위한 문화선교적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미주와 유럽, 중동과 아프리카 문화를 아우르는 이태원에서 다문화와 도심 선교사역을 펼치는 것도 염두에 뒀다.
이런 이유들로 예배 공간엔 ‘산돌교회’ 대신 ‘레 미제라블’이란 이름을 붙였다. 입구 계단엔 ‘이태원에서 가장 낮은 곳’이란 글귀도 써넣었다. 경사진 이태원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기도 하고,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을 알아가는 공동체가 있는 곳이란 의미에서다.
개관 이후 전시와 강연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됐다. 지금은 노숙인 등 취약계층으로 구성된 단꿈한지공방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안 목사는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가련한 자들’이란 뜻이다. 지형적으로 낮은 곳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이들이 모인다는 의미”라며 “향후 구도자뿐 아니라 지역과 인종, 문화를 초월해 우리 사회의 이방인을 환대하는 공간으로 쓰이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리 안에서 불의와 맞선다
산돌교회의 사역은 크게 기도와 선교로 나뉜다. 교회는 기도 사역의 일환으로 국내외 현안을 놓고 기도하는 ‘의인의 간구’란 기도모임을 열고 있다. 본래 후원 선교사와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었으나 2015년 국제적 이슈로 떠오른 시리아 난민 사태가 일어나면서 기도 범위가 확대됐다. 지금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도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오후 열리는 이 모임에는 전 세계에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길 간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
선교 사역은 세계 곳곳의 불의가 해결되길 기도하는 동시에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시작됐다. 교회는 중동과 동북아시아, 이스라엘 지역에 파송한 선교사 7명과 함께 해당 지역에 평화를 심는 사역도 한다. ‘개척자들’ ‘공익법센터 어필’ 등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 시리아 난민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지역을 위한 예배 모임도 이끈다. 교회 예배전도팀인 ‘유다지파’가 거리에서 찬양을 부르며 복음을 전하는 ‘이태원보안관’ 사역이 대표적이다. ‘이태원을 영적으로 지킨다’는 목표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녹사평역 광장에서 찬양예배를 드린다. 유다지파 모임 역시 교회 밖 예배사역자들과 연합해 진행한다.
김 전도사는 “교회 사역 대부분은 복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교회 및 단체와 연대해 진행한다”며 “교회의 공동체 사역과 더불어 사회 곳곳을 섬기는 사역자들과 연대해 한국교회의 ‘사역·영성 플랫폼’으로서 교회가 활용됐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