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산물이자 남북 분단의 상징이던 비무장지대(DMZ)가 이제 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남북의 감시초소(GP)가 철수됐고, 둘레길이 조성돼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을지태극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 우리 국민이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더욱 진전된다면 DMZ가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명소가 될 수도 있다.
긴장 완화로 민간인에 개방
정부는 고성·철원·파주 지역에 ‘DMZ 평화의 길’을 조성해 단계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민간인의 접근이 차단됐던 DMZ가 국민 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고성 구간이 가장 먼저 열린 데 이어 지난 1일 철원 구간이 개방됐다.
고성 구간은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철책을 도보로 이동해 금강산전망대까지 가는 A코스와 통일전망대에서 금강산전망대까지 차량으로 왕복 이동하는 B코스로 나뉘어 있다.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DMZ 남측 철책길을 따라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과 인접한 화살머리고지 비상주 GP까지 방문하는 코스다. 개방을 앞둔 파주 구간은 임진각에서 시작, 도라산전망대를 경유해 GP 철거 현장까지 둘러보는 코스다.
철원 구간을 지난 14일 다녀온 홍수진(25)씨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곳인 DMZ를 둘러보고 잘 보존돼 있는 생태계를 보면서 신기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분단의 아픔도 떠올렸다”며 “DMZ의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남북 관계도 잘 풀려 온 국민이 올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DMZ 평화의 길 조성이 가능했던 것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남북은 지난해 9·19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DMZ 내 GP 22개를 시범적으로 파괴·철수하고 공동 현장 검증도 실시했다. 향후 DMZ 내 모든 GP를 철수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또 우리 군은 현재 DMZ 내에서 지뢰 제거와 유해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전협정의 산물…충돌도 빈번
DMZ는 6·25전쟁을 끝내기 위해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생겨났다. 정전협정 1조 1항에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 간에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남한은 군사분계선(MDL)에서 2㎞ 물러난 곳에 남방한계선 철책을 마련했다. 이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남쪽 5~20㎞ 밖에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설치하고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설정해 특별 관리하고 있다. 북한도 DMZ 내에 철책을 설치했다.
완충지대로 계획됐지만 DMZ에서 남북 간 충돌은 빈번했다. 남한은 민정경찰, 북한은 민경대대라는 이름의 사실상의 군 병력을 DMZ에 파견해 GP를 운영했다.
세계적 명소가 될 DMZ의 미래
DMZ 일대는 지난 60여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멸종위기 동식물이나 희귀 생물종이 서식하는 등 자연 생태계가 잘 유지돼 있다. 잘 보전된 자연 환경에다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났다는 스토리를 접목하면 이곳이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원대 DMZ HELP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창환 교수는 “DMZ 개방의 대전제 조건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라며 “GP 하나, 철조망 하나도 잘 유지해 분단과 평화의 스토리를 부여한다면 DMZ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인류의 유산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장벽 터는 평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무너진 잔해와 터만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보다 훨씬 더 광활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DMZ는 베를린 장벽 못지않은 평화의 상징이 될 잠재력이 있다.
국민일보와 GCS 인터내셔널(밝은사회클럽 국제본부)은 다음 달 29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및 DMZ 철책 일대에서 ‘2019 DMZ 평화대축제’를 공동 개최한다. DMZ 일원에서 태권도 공연과 ‘휴전선 철책에 평화를 걸다’라는 주제의 그림 전시회가 열린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