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여름휴가철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였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가장은 으레 휴가 시기를 아이들의 여름방학에 맞추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비행기 기차 고속버스 호텔 등의 관광지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여름휴가의 풍경이 2000년대 들어 조금씩 바뀌다가 최근 들어선 변화의 정도가 급격하다. 여름방학에 맞춰진 휴가철은 연중 시기 구분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직장에서도 휴가원을 내는 시기가 여름과 겨울에 몰리지 않는다. ‘휴가=1주일’이란 통상적인 인식도 사라져간다. 3주짜리 휴가원을 내고 1년치 연차휴가를 한꺼번에 쓰는 직장인도 생겨나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주는 회사도 많아지는 추세다.
이유가 뭘까. 바로 급증하는 1인 가구 추세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이혼해 혼자 사는 독신 남녀 가구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많아졌고, 이른바 ‘혼족’이라 불리는 이들이 여름휴가철 풍경을 바꿀 만큼 위세를 떨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초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8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6.7%에 이르렀다. 2204만2947세대 가운데 880만5526세대가 1인 가구였다는 것이다. 1인 가구가 600만3551세대에 머물렀던 2008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200만 세대 이상 늘어난 셈이다.
1인 가구를 형성한 혼족들의 경제력은 쉽게 통계수치화되지 않는다.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취업준비생이 대다수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취업한 뒤 결혼할 의사가 없는 ‘무혼족’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혼한 30, 40, 50대와 독거노령층도 1인 가구에 포함되는 건 틀림없다.
어쨌든 여름휴가철 관광산업의 흐름을 보면 1인 가구의 소비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여행사부터 호텔, 항공사, 관광자원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들까지 이들 ‘나홀로 바캉스족’ 또는 ‘혼캉스족’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어서다.
혼자 즐기는 ‘혼캉스족’을 잡아라!
40대에 접어든 전문직 여성 직장인 A씨는 다음 주 월요일 일본 홋카이도로 골프여행을 떠난다. 직장에 1주일 근태계를 내고 떠나는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없다. 여름철 서늘한 기온을 자랑하는 홋카이도에서 그는 혼자 골프장에서 가까운 호텔에 머물고 혼자 노천온천욕을 즐기며 혼자 맛집을 탐방할 계획이다. 그런데 골프는 혼자 치지 않는다. 1인 해외골프 조인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골프 여행사에서 4인 동반자를 다 구해줬기 때문이다. “5박6일인데 하루 18홀씩 다섯 번 골프를 치는 일정이에요. 처음엔 혼자 엄두를 못 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쉽게 1인 조인 골프여행 상품이 있더라고요.”
그는 라운딩 동반자들이 누구인지 신경쓰지 않는다. 5일 동안 같은 동반자인지도 관심 없다. 골프만 같이 치고, 나홀로 휴가를 각자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다.
30대 직장인 B씨는 여름휴가 기간 중 3박4일 혼자 자전거 여행을 갈 예정이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가족들과 2~3일 보낸 뒤 직장에 출근하겠다는 생각이다.
온전히 자신만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예전에는 혼자 자전거를 타러 가면 낯설고 어색했는데 막상 여행지에 와보면 혼자 온 사람이 많아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C씨는 올해 휴가기간에 제주도 한 호텔에서 운영하는 ‘혼캉스족을 위한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수년 동안 혼자 휴가를 떠나는 전형적인 혼캉스족이지만 막상 여행을 가도 무료하게 보내게 되는 일상을 이번엔 요가 프로그램으로 대체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요가엔 관심이 많았는데 직장 다니며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여름휴가철 제주도가 번잡하겠지만 호텔에서 한적하게 요가로 시간을 보내며 명상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세 사람처럼 혼자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잡으려는 ‘혼캉스’ 전문 상품은 비단 골프나 자전거 여행만이 아니다.
혼자만을 위한 여행상품 판매 급증
국내 유수 호텔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1인 토털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관광지 숙박과 식사, 혼자만의 여행설계 가이드 등을 갖추고 ‘경제력 갖춘 혼족’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들만을 위한 패키지 해외여행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기만의 휴식과 철저한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족들을 위해 숙소와 식사 장소 등 최소한만 함께하고 나머지 관광은 1인 투어로 진행하는 ‘온리 포미(only for me)’ 패키지 여행도 존재한다. 서핑이 가능한 유명 해변을 찾아다니는 1인 서핑족을 위해 현지에서 서핑보드를 빌려주고 ‘홀로 서핑족’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관광상품도 있으며, 히말라야 등반을 위한 ‘1인 네팔 등반 관광’도 있다.
혼자 취미활동과 경제생활, 여행 등을 즐기려는 이들을 위한 인터넷 플랫폼도 생겨났다. 이 사이트는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뿐 아니라 결혼 여부, 혼자 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나홀로 경제활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사람을 ‘혼족’이라 정의하고 이들을 위한 정보를 서로 교류케 하며 친목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취지다.
온라인 쇼핑에서도 ‘1인용’ 상품 판매는 급증하는 추세다. 본격 휴가철이던 지난해 7월 11번가의 1인용 캠핑매트 판매량은 전달 대비 38%나 늘었다. 자전거 여행이나 도보 여행 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백패킹텐트도 같은 기간 판매량이 89% 증가했다. 나홀로 여행의 필수품으로 취급되는 셀카봉 판매량도 전년 대비 16% 증가했고, 쉽게 폈다 접을 수 있는 1인용 팝업텐트 등 새로운 상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쇼핑몰 관계자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휴가 대신, 여러 사람의 일정을 다 맞춰가며 떠나야 하는 휴가 대신 간단하게 짐을 싸서 혼자 떠나는 여행 수요가 늘고 있고 조용하게 자신만의 추억을 쌓겠다는 1인 혼캉스족이 늘어나는 게 사실”이라며 “이들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 상품이 속속 출시돼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유명 호텔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인 객실 사용 손님은 비즈니스로 호텔을 찾는 사람 외에는 별로 없었지만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며 “명절 전후에 많이 팔리던 1인 패키지 상품도 이젠 여름철, 겨울철 휴가 기간에 훨씬 예약률이 높다”고 했다.
지난해 한 종합 쇼핑몰이 7월 휴가기간 실시한 고객 대상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966명 중 ‘나홀로 여행을 떠나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58%)이 절반을 넘었다.
인구학 전문가들은 오는 2045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45%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점점 늦어지는 결혼 적령기에다 이혼 인구와 1인 노령층 증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1인 가구층이 아직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20, 30대 미혼층을 중심으로 늘었다면 이제부터는 충분한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중장년층 1인 가구가 크게 늘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족 중심, 여름방학 시기 중심’의 여름휴가 풍경이 앞으로는 더욱 더 ‘나홀로 휴가족’ 중심으로 바뀔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