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때 솔직하다고 한다. 솔직한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서 보기 좋다. 솔직함은 시대를 막론하고 추켜세워야 하는 덕목이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덕목이 다른 덕목과 부딪칠 때는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분별력이 요구된다. 내 감정의 솔직함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솔직하지 않은 쪽을 택함으로써, 그러니까 솔직함이라는 덕목을 포기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요컨대 다른 좋은 일을 위해 어떤 좋은 일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다른 좋은 일을 위해 억제되지 않는 어떤 좋은 일은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모든 상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 배려심이 없거나 감수성이 모자라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솔직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나 감정)을 의식하지 않아서, 자기 기분의 거친 토로 말고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아서 그러는 걸지 모른다. 솔직함은 토로와 상응하는 면이 있다. 마음에 있는 것을 모조리 드러내서 말하는 것이 토로다. 그건 계획이나 성찰 없이 토해낸다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토로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억누르지 말고 감추지 말고 표출하고 발산하라.’ 이 선동적인 슬로건이 우리의 머리 위에 걸려 있다. 이 슬로건은 개인의 자유를 추켜세우고 세상과 타인에 대해 당당하라고 가르친다. 너의 삶은 너의 것이다라는 명제는 남의 눈치나 입장을 살필 필요가 없다는 교훈으로 왜곡된다. 느낀 것은 표현하고 생각한 것은 말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은 살피지 않는다. 자기가 옳고 의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옳고 의로운데 망설이거나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나 종교인들이 이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이유이다. 이들은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관이 사라진 다원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타당성에 대한 고려나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발언 이후의 영향에 대한 고려 없이 쏟아내는 벌거벗은 주장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말들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너무나 상식적이지 않아서 정말로 말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것이 들어 있었을까 의심하게 한다. 숨기지 않고 말한다는 게 그들이 유일하게 당당한 이유인데 이 숨기지 않음, 이 솔직함은 어떤 숨김, 어떤 거짓보다 나쁘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비난받은 이유는 그들이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들 안에 있는 더러운 것, 탐욕과 방종을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내라고 요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지 말고 안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었지, ‘네 안의 더러운 것을 솔직하게 토해내라’가 아니었을 것이다. ‘겉을 깨끗하게 하지 말라’가 아니라 ‘안도 깨끗하게 하라’였을 것이다.
위선은 나쁘지만, 그러나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꾸밈없이 숨김없이 당당하고 솔직하게 토해내는 것보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숨기는 것이 무조건 악이 아니고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 무조건 선이 아니다. 숨기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고 숨기려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예언자는 소돔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들의 죄를 드러내 놓고 말하며 숨기려 하지 않았다’(이사야 3:9)고 진단했다. 적어도 위선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 취하는 악덕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 타인의 평가나 상황에 대한 인식에 둔감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안의 악을 숨기고 선을 위장하기라도 한다. 이 악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출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추하고 터무니없는 것들을 마구 토해내는 솔직함보다 악하지 않다. 이 솔직함은 위선이라는 악덕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 더 큰 악덕으로 몰아넣는다.
선을 위장하려 들지도 않는 세상은 얼마나 무서운가. 자기 안의 추악한 것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성찰이나 반성도 하지 않고 마구 거침없이 토해내는 모든 솔직한, 솔직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위선자라도 되시라고 호소하고 싶다.
이승우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