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총수일가’ 김치·와인 계열사에 팔아

입력 2019-06-17 19:18
태광그룹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계열사들에 김치와 와인을 억지로 팔아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오너 김치’는 일반 김치보다 2~3배 비쌌지만 식품위생법 기준에도 맞지 않는 불량 김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일가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준 태광그룹에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하고 이 전 회장과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 19개 계열사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17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2016년 그룹 계열 골프장인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 512t을 95억5000만원에 구입했다. 김 전 실장은 김치 단가를 종류에 관계없이 10㎏에 19만원으로 일방 결정하고 계열사별로 할당했다. 계열사들은 이 김치를 직원 복리후생비나 판촉비 등으로 사들인 뒤 급여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택배로 보냈다. 일부 계열사는 김치 구매비용으로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하기까지 했다.

휘슬링락CC는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휘슬링락CC 실적이 나빠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김치사업을 벌인 것으로 본다. 휘슬링락CC의 김치 영업이익률은 43.4~56.2%에 달해 2016~2017년 식품업계 평균 영업이익률(3~5%)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김치는 강원도 홍천의 한 영농조합에서 위탁 제조했다. 이 영농조합은 식품위생법에 따른 시설기준이나 영업등록, 설비위생인증 등을 준수하지 않아 고발된 상태다.

이와 별도로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이 전 회장의 부인과 딸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메르뱅으로부터 와인을 46억원어치 구매했다. 계열사들은 임직원 선물 지급기준을 개정한 뒤 복리후생비나 사내 근로복지기금 등으로 와인을 사들였다. 태광그룹의 19개 계열사가 2년 넘게 김치와 와인 구매로 총수일가에 제공한 이익은 33억원이 넘은 것으로 파악된다.

공정위 김성삼 기업집단국장은 “이번 조치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 합리적 고려 없이 상당한 규모의 내부거래로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내린 첫 제재”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