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월, 영화계 양대 산맥인 두 거장의 작품이 맞붙었다.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다. 당대를 풍미한 배우 최은희와 김지미가 춘향으로 각각 나서며 열기는 한층 거세졌다. 사람들은 이 치열한 흥행 다툼을 ‘춘향전쟁’으로 불렀다.
지난 5일부터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 오르고 있는 ‘춘향전쟁’(사진)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가져와 상상력을 덧대 풀어낸 음악극이다. 중견 연출가 변정주가 무대화한 작품으로 영화 개봉 전날 필름을 들고 잠적한 폴리아티스트(효과음 전문가)와 신 감독의 얘기를 다뤘다.
극의 관전포인트는 서사에 활용되는 다채로운 ‘소리’들이다. 무대 위 폴리아티스트(오대석·김대곤)는 영화에 소리를 덧입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콩으로 파도 소리를 내는가 하면 풍선으로 불꽃놀이 음향을 뚝딱 만들어 낸다. 번갈아 출연하는 소리꾼 김봉영과 오단해는 신 감독과 변사 역을 맡아 구수한 목소리로 극을 이끈다. 여기에 창작국악그룹 ‘그림’이 현대적으로 해석한 세련된 전통음악이 더해지는데, 공연 내내 관객들의 눈과 귀를 단단히 붙든다.
판소리와 이색적인 음향을 한데 모아놓은 구성이 참신하다. 신창렬 그림 대표 겸 음악감독은 1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악기보다 깊이 들어간 소리 단위에 관심을 두고 3년간 구상한 작품”이라며 “소리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담고 싶었다. 폴리아티스트의 음향과 국악을 새로우면서도 친숙하게 담았다”고 설명했다.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 시발(始發)택시 등 극을 메운 복고적인 소재가 전하는 진한 향수도 이 공연의 볼거리 중 하나다. 신 대표는 “국악과 옛이야기, ASMR(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백색소음)을 닮은 감각적인 음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했다. 80분, 공연은 23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