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권력형 비리 취재하던 기자 체포… 러시아 신문사 3곳 이례적 반박 성명

입력 2019-06-11 19:05
6일 러시아 매체 메두자가 제공한 사진으로 언론인 이반 골루노프가 모스크바 경찰서 앞에 서 있다. AP뉴시스

언론탄압으로 악명 높은 러시아에서 언론사들이 이례적으로 정부에 맞서 집단행동을 했다. 러시아 경찰은 최근 유명 탐사보도 전문기자 이반 골루노프를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했다. 러시아 언론사들은 경찰이 권력 비리 취재를 방해하려 사건을 조작했을 수 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러시아 유력 신문사인 코메르산트, 베도모스티, RBC는 10일(현지시간) 골루노프를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한 경찰을 조사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매체들은 이날자 지면 1면에 ‘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라는 항의문구를 싣고 마약사건 조작 가능성을 다뤘다.

러시아 국영방송 NTV의 뉴스 진행자도 마약사건이 조작됐다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표적인 친정부 성향 언론인 드미트리 키셀료프는 국영 로시야1 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찰이 일 처리를 서툴게 했으며 골루노프에 대한 구타가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집단행동은 점차 민간으로도 확산하는 모양새다. 시민들은 경찰서 앞에서 ‘나, 우리는 이반 골루노프다’라는 문구가 담긴 신문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러시아 유명 래퍼 옥시미론, 영화배우 슐판 하마토바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소셜미디어에서 구명운동에 나섰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후손인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표클라 톨스토야는 “이것은 단지 언론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며 “우리 중 누구라도 체포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도 이 사건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이례적인 저항에 크렘린궁이 깜짝 놀란 것 같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러시아 언론이 정부에 집단 반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협박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하는 언론인도 많다. 미국의 비정부기구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 이후 러시아에서 기자 58명이 살해됐다. 국제 언론감시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해 러시아 언론 자유도에 0점을 줬다.

골루노프는 지난 6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경찰 검문을 받다가 체포됐다. 당시 그의 배낭에서는 마약 물질 4g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후 그의 임대아파트를 압수수색해 코카인 5g과 의심스러운 가루, 저울 등을 찾아냈다.

하지만 골루노프는 마약 거래 혐의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은 누군가 배낭에 몰래 마약을 집어넣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루노프는 최근 러시아 대부업체의 비리와 장례 사업을 인수하려는 한 단체를 취재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시 고위직이 비리 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취재 중에도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골루노프의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2개월 가택연금을 명령했다. 하지만 골루노프가 경찰에 구금 중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그가 소속된 온라인 매체 메두자가 폭로하면서 파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