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에 청와대·경찰 상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 수사가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의 외압 정황 진술을 수사단이 사실상 배제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국민일보 6월 6일자 12면 참조). “경찰 관계자를 모두 조사했는데 외압받은 바 없다고 했다”던 검찰 발표가 사실이 아니었던 셈이다. 수사단이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와 당시 경찰 고위급 인사들의 직권남용 혐의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이같이 판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기획관은 “2013년 4월 초 이성한 전 경찰청장 취임 직후 김 전 차관 사건 보고를 하러 갔더니 이 전 청장이 내게 ‘남의 가슴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고 했다”며 “여기서 ‘남’은 김 전 차관을 얘기한 것”이라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는 검찰에 “당시 이 전 청장의 이런 표현들이 부담돼 외압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4일 김학의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경찰 관계자들은 모두 외압을 받은 바 없다고 했다”고 강조했었다.
검찰은 이 전 기획관의 진술을 뒤늦게 인정했다. 지난 5일 “이 전 기획관이 외압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다만 이 전 기획관은 강신명 당시 사회안전비서관 외에 청와대 인사의 전화를 직접 받은 적은 없었다”며 “내부적으로 (외압을) 받았을 수는 있는데 외부인 청와대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기획관이 청와대로부터 ‘직접’ 외압을 받지 않아 그의 진술을 브리핑에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검찰은 경찰 상부의 외압 정황에 대한 이 전 기획관의 언급도 청와대와 관련이 없어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전 기획관은 통화에서 “매일 이 전 청장에게 수사 상황을 직접 보고했다”며 “그는 ‘기획관이 보고하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수사 의지를 꺾어 놨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이 전 청장으로부터 ‘벌’을 받기도 했다. 보고 열흘쯤 뒤인 4월 15일 기획관 부임 4개월여 만에 경찰대 학생 지도부장으로 전보됐다. 이 인사는 당시 수사 무마를 위한 좌천 인사로 평가됐다.
이 전 기획관은 청와대의 외압 정황도 검찰에 진술했다. 김학배 전 경찰청 수사국장이 청와대 전화를 받고 부담을 느꼈던 상황,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청에 직접 찾아왔던 사실 등이다. 김 전 국장은 다만 검찰에 “박 전 행정관을 경찰청에서 만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 전 청장도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고 이 전 기획관에게 외압을 하지 않았다”고 검찰에 설명했다고 한다. 이 전 기획관은 “검찰이 입맛에 맞는 진술만 취사선택한 것”이라며 “김 전 국장은 수사 의지가 없었던 사람이고 이 전 청장은 박근혜정부가 임명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한 검찰 과거사위원회 위원도 “검찰이 외압 여부를 두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이 경찰의 ‘별장 동영상’ 정보 수집을 내사라고 판단한 부분도 논란이다. 검찰은 경찰이 3월 초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내연녀였던 권모씨를 만나 동영상을 직접 봤으며 권씨의 ‘진술서’를 이메일로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내사가 진행됐다고 봤다. 경찰이 김 전 차관이 내정된 3월 13일 이전 청와대에 ‘내사 허위 보고’를 했다고 판단한 근거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서도 이 전 청장 진술을 근거로 삼았다. 이 전 청장은 ‘이 같은 정보 수집은 내사라고 봐야 할 것 같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권씨를 만난 것은 정보 수집의 일환이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당시 경찰청 범죄정보과 소속이었던 강일구 총경은 “검찰이 언급한 진술서는 권씨가 변호사와 상의하려 만든 자료였을 뿐 정식 진술서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정보과는 비수사 부서인데 무슨 내사를 했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의구심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외압 여부에 대해 정반대 진술이 나왔는데 검찰은 외압을 안 했다는 쪽 얘기만 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3년 경찰 수사팀 관계자들은 직권남용 혐의로 이 전 청장을 고소 또는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