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멕시코 관세 무기한 연기”… 협상 타결됐지만 불씨 여전

입력 2019-06-09 19:26 수정 2019-06-09 23:02
사진=AP뉴시스

미국과 멕시코가 불법 이민 및 관세 협상을 가까스로 타결시켰지만 기존 합의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양국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사진) 행정부는 섣불리 대(對)멕시코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가 역풍에 직면하자 일시적으로 협상을 매듭지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벼랑끝 전술’이 효력을 다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멕시코와 합의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오는 10일 멕시코산 제품에 부과될 예정이었던 관세는 무기한 연기(indefinitely suspend)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이어 “멕시코는 미국의 남쪽 국경의 이민자 행렬을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8일에도 “멕시코는 (합의 이행을 위해) 매우 노력할 것이고 양국에 성공적인 협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나온 양국 합의사항은 기존 내용을 반복한 것일 뿐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3쪽짜리 공동문서에 따르면 멕시코는 중남미 이민자가 유입되는 남쪽 국경에 국가방위군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게 된다. 이는 지난 3월 커스텐 닐슨 당시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 올가 산체스 멕시코 내무장관의 비공개 회동에서 이미 합의됐던 내용이라고 NYT는 전했다.

합의사항 가운데 망명 신청을 한 이민자들을 신속하게 멕시코로 돌려보내고 망명 재판이 끝날 때까지 머무르게 하겠다는 내용 역시 지난해 12월 양국이 교환한 외교문서에 적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은 이후 부정적 반응이 속출하자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합의사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트위터에 “NYT의 또 다른 거짓 보도”라며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합의)사항도 있다”고 적었다.

미국은 또 이번 협상에서 멕시코를 일명 ‘안전한 제3국(safe third country)’으로 지정해 국경을 넘은 이민자 중 멕시코에 먼저 망명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권한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벼랑끝 전술’이 예측 가능해지면서 효력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멕시코가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농산물을 수입할 예정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논란거리다. 그는 “멕시코는 미국 농민들로부터 즉시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그러나 협상에서 이 방안이 논의된 적은 없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이번 협상이 치밀하게 이뤄지지 못한 만큼 양국 갈등은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멕시코가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관세 부과 권한을 꺼내들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는 이전의 관세 (부과) 입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은 성명에서 “트럼프는 미국의 친구이자 이웃인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무모하게 위협해 미국 리더십을 약화시켰다”며 “위협과 분노발작(temper tantrums)은 협상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의 성명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수치”라고 맞받아쳤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