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 75돌 기념식 참석한 메르켈 “유럽 통합·화해 일궈… 독일도 나치서 해방”

입력 2019-06-06 19:31 수정 2019-06-06 23:5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앞줄 오른쪽 네번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앞줄 오른쪽 두번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앞줄 왼쪽 두번째) 등 각국 정상들이 5일(현지시간)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린 제75회 D-데이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영국 남부 포츠머스에서 5일(현지시간)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의 앙헬라 메르켈 총리도 참석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패전을 안겼던 결정적 작전이다. 이런 자리에 패전국 정상이 영국 미국 등 승전국 정상과 나란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독일 입장에선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이 껄끄러울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은 정상인 총리가 2004년 60주년 기념식부터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40주년과 50주년을 맞던 1984년과 1994년 당시 헬무트 콜 총리는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에게 타진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를 거부했고, 양국은 이 문제로 미묘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60주년이던 2004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먼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독일 정부는 자신들의 끊임없는 과거 반성을 국제사회가 확실히 인정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슈뢰더 총리의 참석은 유럽통합의 주도세력인 독일과 프랑스의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해묵은 적대감을 털어버리는 전환점이 됐다. 이후 양국은 돈독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국제정치에서 공동전선을 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날 메르켈 총리는 기념식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유럽만이 아니라 독일에도 나치로부터 자유를 찾아줬다. 수많은 장병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면서 “이 작전으로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면서 유럽의 통합과 화해가 이뤄졌고, 70년 이상 지속된 평화의 질서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기념식에는 전승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불참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은 그동안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에 주로 프랑스가 주관했으나 75주년인 올해는 영국이 주관했는데, 양국 정부 모두 푸틴 대통령을 초청하지 않았다.

2차 대전에서 2700만명의 희생자를 낸 러시아는 상륙작전 기념식 참석 자격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04년 50주년은 물론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직후였던 2014년 60주년 기념식에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초대로 참석한 바 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를 고려해 푸틴 대통령을 초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포츠머스 기념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6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로 자리를 옮겨 참전용사들을 추모했다. 메르켈 총리는 동행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먼저 베르쉬르메르의 영국군 기념비 개소식에 참석했다. 두 정상은 이어서 오마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미군 묘지로 자리를 옮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상륙작전 당시 격전이 벌어졌던 이곳에는 미군 묘지 9400여개가 자리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상륙작전에 참여했던 미군 참전용사 5명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현장에 있던 참전용사들에게 “당신들은 가장 위대한 미국인이고 나라의 자랑이다”며 “우리 공화국의 영광인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