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갈등) 이슈가 언제 해결될지 알 수 없다. 경기 확장 국면이 유지되게끔 적절한 역할을 할 것이다.” 5일(한국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시카고 통화정책 콘퍼런스 연설 중 던진 한 마디에 뉴욕 증시는 2% 넘게 뛰었다. 그간 인내심을 강조하던 연준 의장이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된다고 규정한 뒤 ‘적절한 역할’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가 임박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돈이 풀리길 원하는 금융시장의 아전인수 격 해석만은 아니다. 연준 이사를 지냈던 사라 블룸 래스킨 전 미 재무부 차관은 CNBC에 출연해 “파월 의장이 메시지를 던졌다”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할 준비가 됐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말했다. 앞서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수익률 곡선 역전이 지속된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향후 경기를 어둡게 보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단기물보다 장기물의 금리(수익률)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제 금융시장의 관심은 더 이상 미국 기준금리 인하 여부가 아니라 시점이다. 올해 중 남은 FOMC는 이달을 포함해 다섯 차례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 워치 툴’은 다음달 열리는 FOMC에서의 기준금리 인하 확률을 65.1%로 제시한다. 9월의 인하 확률은 92.6%, 12월은 98.9%다. 올해 중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길게 끌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성장 둔화, 임금소득 정체를 우려하는 곳은 연준뿐만이 아니다. 호주 중앙은행은 지난 4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렸다. 2년10개월 만의 인하였는데, 고용 증대와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을 위한 조치였다.
각국 중앙은행이 차츰 ‘인하’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도 자연스레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경제 전망을 내고 “한은 기준금리는 올 하반기 중 한 차례 인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높인 요인이었던 ‘금융안정 우려’는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로 잦아들었다. 반면 실물경기 후퇴와 저물가는 부각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하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2.0%에 머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집계된 뒤부터 학계에서도 “정부의 과감한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을 갖는 이들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도 ‘힌트’가 담겼다고 해석한다. 지난 4월에 “수출 증가세 둔화”로 적혔던 문구는 지난달 “수출이 부진한 모습”으로, “(고용)부진이 일부 완화됐다”는 표현은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높아졌다”로 바뀌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은이 인하를 하더라도 연말에 이르러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연준이 먼저 금리를 내린다면 한은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얘기다. 외국인 자본 유출에 영향을 주는 내외 금리차(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차이)는 현재 0.75% 포인트다. 파월 의장의 시그널대로 미국 금리가 0.25% 포인트 낮아지면 내외 금리차는 0.50% 포인트로 줄어든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