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거대 IT기업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 규제 당국은 조만간 애플·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이른바 ‘IT 빅4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도 여기에 호응해 빅4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IT기업들이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비판받으면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표적이 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최근 몇 주간 대형 IT기업의 반독점 조사 관할권을 조율해 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 결과 법무부는 애플과 구글을, FTC는 아마존과 페이스북을 조사하기로 했다. FTC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이다. 법무부와 FTC는 각각 조사대상 기업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업무를 분담했다고 바로 조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일단 구글에 대한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구글도 법적 대처에 나선 상황이다. 이어 법무부는 애플에 대한 조사도 고려하고 있다.
FTC는 이미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1년째 조사해 왔다. 하지만 반독점 조사를 새로 시작하면서 더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FTC가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 대한 조사를 아직 시작한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빅4 조사 방침이 알려지자 민주당이 장악한 미 하원도 호응했다. 민주당 소속 하원 법사위원회 데이비드 시실린 반독점소위원장은 이날 IT 빅4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실린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IT 빅4 기업이 장악한) 공간에서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 규제 당국이 빅4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를 조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페이스북의 주가는 7% 이상 하락했다. 구글과 아마존의 주가도 급격히 떨어졌고, 애플의 주가도 1% 하락했다.
IT업계에 반독점법을 적용하는 문제는 그동안 학계와 업계의 논란거리였다. 하지만 최근 IT업계가 개인정보 침해 등의 이유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빅4에 대한 비판 여론이 늘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아예 대형 IT기업을 분할하자고 주장했다. 빅4는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도 띄게 됐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 정치인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빅4를 공격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두 규제 당국이 IT기업을 조사하겠다고 일제히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법무부와 FTC는 그동안 선두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저지하는 데 주력했다. 가장 최근에 거대기업 반독점 조사에 나선 것은 1998년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집중 타깃이 돼 기업분할까지 거론됐지만 가까스로 회사를 지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구글 등 후발 주자의 추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