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부천·창원은 ‘치킨집의 무덤’… 폐업이 창업보다 훨씬 더 많아

입력 2019-06-04 04:05

김모(36)씨는 2010년 경기도 수원에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차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대신 선택한 창업이었다. 매일 새벽까지 닭을 튀기는 일상에 가족 전체가 매달렸다. 그래도 쏠쏠한 매출 덕에 힘이 났다고 한다. 김씨는 “주변에 삼성그룹 계열사를 다니는 1인 가구가 많이 살고 있어 장사가 괜찮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한 집 건너 치킨집이 들어설 정도로 시장은 포화상태다. 김씨와 같은 프랜차이즈 치킨집도 주변에 5곳이나 생겼다. 매출은 점점 떨어졌고, 가족은 하나둘 다른 밥벌이를 찾아 나섰다. 김씨는 “가맹점 비용에다 이것저것 비용을 빼면 한 사람 먹고살 돈을 손에 쥐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자영업 대박’의 꿈은 얼마나 현실과 가까울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3일 발표한 자영업 분석 보고서 ‘치킨집 현황 및 시장여건 분석’에 따르면 매년 전국에 치킨집 6200곳이 창업을 하지만, 동시에 8000곳 넘는 치킨집이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악화로 신규 창업자가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기존 치킨집과 새로운 창업자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치킨집은 사업 경험·지식 면에서 부족한 초보 창업자들이 선호하는 대표 업종이다. 창업 비용과 운영 부담이 낮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전국 치킨집은 8만7000곳에 달한다. 전체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 10곳 가운데 2곳이 치킨집(21.1%)일 정도다. 지난해 기준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수는 409개나 된다. 신규 치킨집 창업자의 연령 범위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50대나 60대 은퇴세대에 이어 30대 미만의 젊은층도 치킨집 창업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에서 치킨집이 가장 많은 광역시·도는 경기도(1만9253곳)다. 서울(1만4509곳)보다 많다. 인구 1000명당 치킨집 수는 전남(2.43개), 광주·제주(2.34개), 충북(2.18개) 순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높게 나타났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치킨집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도 수원(1879개)이었다. 특히 수원시 팔달구는 치킨집 평균 면적(83.4㎡)이 가장 넓고 인구 1000명당 매장 수(3.04개)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경남 창원(1688개), 경기도 부천(1683개), 충북 청주(1644개) 등이었다.


그러나 ‘치킨의 성지’ 수원에선 창업하는 치킨집보다 문을 닫는 치킨집이 더 많다. 최근 5년간 수원시 인계동에서 62개 매장이 새로 생기는 대신 78개 매장이 폐업했다. 문을 닫은 치킨집의 67%는 5년 넘게 장사를 해오던 매장이었다. ‘터줏대감’이 사라지고 ‘새내기’가 개·폐업을 반복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천, 창원 등도 마찬가지다. 부천에서 최근 5년간 창업한 치킨집은 2014년 205개에서 지난해 98개로 절반 이상 줄었다. 지역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창원도 2015년 164곳의 치킨집이 새로 문을 열었지만, 지난해엔 111곳으로 감소했다. 반대로 폐업하는 치킨집은 2015년 115개에서 2018년 161개로 크게 늘었다. 연구소 측은 “경쟁 심화와 지역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측은 “업종이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이라 영업이익 하락, 경쟁 심화 등으로 치킨집 영업 여건이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