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갈래요?”… ‘양지동 주방’에 가면 영성까지 배부르다

입력 2019-05-30 00:05
박광리 우리는교회 목사가 28일 교회 앞 양지동 주방에서 ‘라면 먹고 갈래’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경기도 성남 양지동 을지대 학생들에겐 요즘 ‘양지동 주방’이 인기다. 2000원만 내면 콩나물과 만두를 넣어 제대로 끓인 맛 좋은 라면 한 그릇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3000원을 더 내면 삼겹살도 한 접시 먹을 수 있다. 수익금은 양지동 어르신 섬김에 쓰니 먹고 나면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도 푸근해진다.

양지동 주방의 주인은 우리는교회(박광리 목사) 교인들이다. 돈이 없고 학업이 바빠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을 본 교인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을지대 뉴밀레니엄홀 지하 대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서 28일 만난 박광리(49) 목사는 “주일에 교인들이 먹을 점심 식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을 주중 학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한 달에 한 번 홀몸 어르신을 위한 음식도 푸짐하게 대접하니 일거양득인 셈”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내려놓음’이 익숙한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라면 흔히 있을 법한 많은 요소가 우리는교회에는 없다. 우선 박 목사부터 담임목사로서 이것저것 교인들에게 지시할 권리를 내려놓았다. 교인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회를 위한 일을 하도록 돕는다. 양지동 주방 아이디어 역시 교인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우리는교회 성도들이 최근 경기도 성남 을지대 뉴밀레니엄홀 지하 대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는 이곳을 빌려 예배를 드리지만 개척 3년째인 현재 450여명이 출석하고 있다. 우리는교회 제공

교인들의 자발성이 돋보이는 모습은 교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평일에는 교회의 일부 공간이 기독 동아리 학생들에게 개방돼 그들의 성경공부를 돕는다. 교회가 한 일은 사용하지 않는 여유 공간을 내준 것뿐이다. 교인들은 복지관이나 보육원, 문화센터를 찾아 어려운 이웃을 자발적으로 돕는다. 한번은 교인들이 나서서 한 보육원의 창문에 방풍 비닐을 달아줬다. 박 목사는 “교인들이 각자 삶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낼 방법을 찾으면 교회는 그 일을 돕는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름’도 내려놓았다. 탈북자 자녀를 돌보는 경기도 한 교회의 전세금을 교회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빌려줬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교회도 아니었다. 우리는교회가 개척 1년을 맞아 예배장소를 고민하며 재정을 아끼던 때였다. 박 목사는 “그 교회가 아이들의 방과후수업과 주일예배를 잘 인도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면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곳을 돕는 일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지난 3월 문을 연 교정선교단체 기독교세진회의 수원교정센터를 위해서도 1층 카페와 2층 청소년 보호시설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했다. 교회는 그저 보호 소년을 돕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을 한 것뿐이었다. 박 목사는 “교회가 가진 선교적 힘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심력보다는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이 되도록역발상을 했다”고 말했다.

내려놓음에 익숙한 교회이지만 내려놓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복음’이다. 박 목사는 주일설교를 위해 평일에는 온종일을 준비한다. 박 목사는 “바쁜 현대인은 주일에 영적 생존을 건다”며 “주일만이라도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최고의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분당우리교회 부목사로 활동하면서 찬양을 오랜 기간 인도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교회를 개척한 후엔 찬양을 최소화했다. 복음이 교회의 중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친교 시간을 갖는 성도들의 모습. 우리는교회 제공

그러자 복음의 본질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일상이 분주한 젊은 부부들이 찾아왔다. 2016년 66㎡(20평) 남짓한 공간에서 26명 교인으로 시작한 교회는 두 달 만에 55명이 모였고 현재는 450여명 교인이 주일예배에 출석하고 있다. 오직 복음만을 부여잡았을 때 이에 공감하는 청장년 교인들이 예상보다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각자가 성전으로서 흩어진 교회를 지향하는 ‘인대인(人對人)’ 사역을 지향한다. 인대인은 복음을 먼저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교회 밖으로 나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과 더불어 복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든 신조어다. 새가족 사역 전문가인 좋은목회연구소 김민정 목사와 박 목사 등이 함께 만들어낸 개념이다.

인대인 성도라면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도 하나의 교회로서 주체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 한 50대 여성 교인이 그 사례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주변에 불신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만 봉사를 하다 보니 정작 불신자에게 다가갈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는 취미로 탁구를 하면서 친구 사귀기에 나섰다. 삶의 반경을 넓히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교인은 이웃 가게 주인으로부터 무례한 일을 당했지만, 훗날 그를 보듬어 주었다. 그러자 그는 울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에게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교인은 그를 위한 기도하기 시작했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개개인이 결정권을 갖고 살아가는 데 익숙하지 않다”며 “목사가 내려놓을 때 세상 속에 흩어져 각자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모습을 우리는교회에서 먼저 만들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성남=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