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꽃피우는 작가’로 불리는 설치 미술가 최정화(58)씨가 미술계에서 잘 팔리고 있다. 지난해 그릇, 냄비 등 식기를 이어 붙여 꽃처럼 설치한 9m 대형 작품 ‘민들레’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설치돼 언론에 크게 소개됐던 그 작가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중견작가 지원 프로그램 ‘현대차 시리즈 2018’에 선정돼 5개월간 장기 전시를 열었다. 그 전시가 지난 2월에 끝나자마자 3월 말 개관한 경기도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 내 아트스페이스 광교에서 또 전시를 열고 있다. ‘최정화, 잡화雜貨’전이 그것인데, 역시 5개월에 걸친 장기 전시다.
한 작가가 국공립미술관에서 릴레이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인기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최정화의 작품은 공공미술 시장에서도 사랑받아 국회의사당, 코엑스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형 회고전을 작가가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행태는 미술계 발전의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작가로선 작품 세계에 혁신을 꾀할 시간을 잃을 수 있고, 관람자로선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찾은 아트스페이스 광교 전시장에는 최 작가 특유의 플라스틱 바구니, 솥, 양은 냄비, 식기, 빗자루, 빗, 조명 등 일상에서 소비되는 흔한 재료로 만든 작품들이 나왔다.
그런데 기시감이 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것처럼 여러 물건을 쌓거나 늘어놓는 특유의 디스플레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 재료 역시 30년 전부터 써오던 일상의 싸구려 물건에서 가져왔다는 점도 비슷하다. 신작도 있긴 하나, 언어의 유희는 있을지라도 혁신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예컨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식기를 방사형으로 이어붙여 ‘민들레’라고 했다면, 이번에는 같은 재료를 뫼비우스 띠처럼 꼬아 ‘타타타’라고 작명했다. “‘과거는 가는 게 아니라 오는 것’이라는 순환의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오뚜기 알케미’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소쿠리를 탑처럼 쌓아 올려 설치한 ‘숲’을 연상시킨다. 소쿠리 탑이 오뚝이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재료를 사용하는 기술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정지에서 동작으로 진화했다. 같은 재료의 변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는 시대의 요구를 통찰해야 한다. 회고전 형식을 띤 이번 전시에선 1990년대 초반 제작한 ‘IQ 점프-나의 아름다운 20세기’를 복원해 놓았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것인데, 서양 고대의 거대한 제단을 새빨간 플라스틱 국산 바구니로 재현함으로써 서양 모더니즘을 비판해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이런 일련의 작품을 통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90년대 X세대의 대표주자가 됐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서민을 대변하는 키치 예술을 상장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점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고래를 죽게 만드는 생태 재앙의 시대다. 최정화의 작업 세계는 90년대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미술기획자 홍경한씨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대적 전시를 한 유명 작가를 모셔와 후광효과를 얻겠다는 기획 의도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작가도 자주 전시를 하면 주목은 받을 수 있겠지만 혁신에 대해 고민할 여유 없이 동어반복의 미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글·사진=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